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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중반에 아쉽게 죽은 소설가 조르주 페렉. 대표 소설 <인생사용법>. 엉뚱하고 다양한 군상들을 소개하는 장면이 있다. “총포의 위협 앞에서 수술하는 외과의사, 빅토르 위고의 편지 세 통을 발견한 헌책방 주인, 한 신문에서 자신의 부고 기사를 발견한 마크 트웨인, 러시아 출신 여가수의 피아노를 조율하는 맹인, 채식주의자의 수프에 고깃가루를 넣은 학생, 아파트 월세를 높여 받을 생각 중인 건물 관리인, 왼손 세 손가락을 잃고 낙담하는 실험실 조교, 6개월 동안 방에서 나가지 않은 대학생, 한국에서 자신의 순찰대를 죽게 만든 미국인 탈주병, 사위가 면도할 때 더운 물을 뚝 끊어버린 장모, 삽화가 있는 기사를 시큰둥하게 들여다보는 간호사….” 이처럼 세상엔 사람들이 많고 사람마다 모두 제각각 다르다. 겉 다르듯 속도 다를 것이다.

학교에서 쫓겨난 시절 잠깐 택시를 몰아봤다. 얼마 못하고 그만뒀지만 이상 요상한 경험이었다. 참말 다양한 군상들을 만났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라 손님과 라디오를 주로 듣거나 대화를 나눴다. 내가 좋아하던 클래식 방송을 손님들은 시끄럽다며 끄라고들 했다. 운전할 때마다 바뀌는 회사 택시에선 퀴퀴한 냄새가 진동했고, 나는 그때부터 비염으로 괴롭기 시작했다. 한번 택시를 몬 경험이 생기면 택시 기사가 남 같지가 않다. 바닥 중에서도 길바닥. 햇볕이 따가운 운전석에 앉아 오늘도 안전 운전과 친절을 나누고 계실 수많은 분들.

개인택시가 나온 목포가 고향인 아저씨의 돼지머리 고사 상에 초대받은 일도 있었다. “새로 생긴 애인이라고 생각허고 싸쌀 얼러감시롱 댈꼬 댕기쇼잉. 몰미 나게 운전하시지 말고잉.” 동향 친구가 만원짜리를 콧구멍에 쑤셔 넣고 막걸리를 쭉 따랐다. “막걸리가 먼노므 버꿈이 이라고 많이 난다냐. 손님이 버꿈 맹키로 붙을랑갑구마잉.” 

오월 광주를 그린 영화 <택시운전사>가 화제다. 전두환씨 말고는 죄다들 극장에 갈 태세다. 나도 극장에 앉았었는데, 마치 운전대에 앉아 ‘제3한강교’를 부르며 달리고 또 달리는 기분이 들었다. 만복을 빌며 복돼지에게 돈을 꽂았던 기억. 살기 좋은 세상을 빌며.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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