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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은 음식의 마침표이자 화룡점정이다. 음식은 잘 빚은 그릇을 만나 비로소 제대로 된 ‘한 그릇’이 된다.
그릇은 음식의 온기만을 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음식을 마구 쏟아 놓아서는, 음식은 음식이 되지 못한다. 밥을 밥그릇에 담고, 국을 대접에 뜨고, 장이며 반찬이며 일품요리를 마침맞은 기명에 놓은 다음에야 온갖 먹을거리가 마침내 제자리를 찾는다. 그러고 나서야 사람의 입속으로 들어간다. 밥솥, 국솥, 기름솥, 번철, 석쇠, 화덕에서 아직 열기를 품고 있는 먹을거리에 바로 맨입술, 맨손을 가져다 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열기가 빠졌다고, 또는 입술 대고 손 댈 수 있을 만큼 식었다고 솥에 고개를 처박는 사람이 있는가. 국자, 숟가락, 젓가락, 집게, 뜨개 등은 규모와 형식이 다른 또 하나의 그릇이다.
그릇은 이렇듯 일상과 함께하는 구체적인 사물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그릇을 놓고 한 나라의 문화 역량과 삶의 질을 가늠하기도 했다. 배울 점이 있다면 병자년의 수치는 잠깐 제쳐 두자, 청나라면 어떠냐 배울 점은 배우자고 주장한 박제가(朴齊家, 1750~1805)가 그랬다. 그는 <북학의(北學議)>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국 자기는 섬세하지 않은 것이 없다. 비록 휑한 마을, 다 쓰러져 가는 집에도 고급스러운 그림 그린 병, 술잔, 주전자, 사발 등속이 있다. 사람들이 꼭 사치를 좋아해서가 아니다. 그릇 빚고 굽는 쟁이(土工)의 일은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다.”
몇 차례 청나라를 다녀온 서울 사람이, 임금과 회식도 할 만한 사람이 잘사는 나라 사치품이 부러워 뱉은 불평이 아니다. 그릇에 대고 우리가 지금 정말 잘 살고 있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구체적인 사물을 통해 미래를 기획하자는 제안이었다. 쓰는 쪽에다가도 이런 마음을 되새겼다. “대개 물건이 오래가는지, 금세 부서지는지는 물건을 어떻게 간수하느냐에 달린 것이지 그릇 두께에 달린 것이 아니다. 그릇의 단단함을 믿고 방심하기보다는 조심하는 마음으로 그릇을 아껴 쓰는 편이 훨씬 낫다.”
일상생활의 내용을 이루는 구체적인 사물이 조잡하기에 조선 사람들의 마음과 삶까지 거칠어졌다는 것이 박제가의 진단이다. 조잡한 그릇과 사람들의 거친 마음, 그리고 나라의 엉성하고 못난 국정운영이 서로 손에 손을 잡고 있다. 그러니 숙련 기술자를 길러 보자. 구체적인 사물을 통해 악순환의 한 고리라도 끊어보자고 했다.
기술자가 대접받는 사회의 예로, 임진년의 수치를 잠깐 제쳐 두고 일본을 거론하기도 했다. 일본에는 분야마다 “천하제일” 소리를 듣는 기술자가 있다는 것이다.
삶의 내용, 구체적인 사물을 염두에 둔 진단과 미래 기획이라니, 오늘날에도 대단한 설득력이 있는 말이고 생각이다. 하지만 이런 말과 생각은 그 다음으로 건너가지 못했다.
구체적인 사물로 영글 기회를 자꾸만 놓치다 1910년 8월에 이르렀다. 1910년 8월16일 제3대 한국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을 통감관저로 불러 병합과 관련한 각서를 전달한다. 이완용의 반응은 한국이 사라지더라도 황실에 대한 예우는 보장해달라는 요청뿐이었다. 8월18일 이에 따라 한국 내각회의가 열렸다. 병합에 대한 저항이 없는 한가한 회의였다. 8월22일 어전회의에서 순종은 한국의 통치권을 “대일본국 황제폐하”에게 “양여”한다는 조령을 내린다. 이날 오후 데라우치와 이완용이 전권위원이 되어 병합조약이 조인되었다. 이 조약이 공포, 시행된 1910년 8월29일부로 나라가 없어졌다. 일본제국의 일부로 전락했다. 삶의 질이고 문화 역량이고 미래고 다 하릴없는 노릇이 되었다. 이제 살아남는 데에, 제국주의 전쟁범죄의 하수인을 면하는 데에 우선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온전한 밥그릇을 누리는 삶, 보통 사람에게 실팍한 그릇 하나씩은 돌아가는 삶에 대한 기획이 실제로 의미가 있기까지, 우선 숨통이라도 틔우기까지, 한국인은 1945년 8월15일을 기다려야 했다.
8월이면 숨이 막힌다. 먹고살자니 오이로 복숭아로 민어로 냉면으로 맥주로 빙수로 달려가야 하는데, 그저 그러기에는 뭔가 켕긴다. 말로 이루 다할 수 없는 착잡함이 온몸에 감긴다.
8월16일부터 29일 사이, 되감아 8월15일은 먹는 얘기를 하기가 무척 힘든 때다. 이 켕김, 착잡함은, 그러나 제대로 겪어야 할 긴장이고 불안이다. 잡아야 할 갈피이다. 미식 따위 한순간에 허망한 노릇이 될 수 있음을 굳이 되새긴다. 국치일이 낀 8월이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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