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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북·미 간의 비핵화 논의가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의 수립이 점점 더 분명하게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다. 이제 한반도에 전쟁이 끝났다는 종전선언을 넘어 평화협정이 체결될 것이고, 우리는 지금껏 가보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역사의 노정에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단순히 전쟁 없는 상태가 평화는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어떤 ‘적극적 평화’(요한 갈퉁)의 상태여야 한다. 다시 말해 분단이 만들어내는 구조적 폭력마저 제거해서 한반도의 모든 사람에게 존엄한 삶을 가능하게 해 줄 지속적인 삶의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아마도 남과 북이 상호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될 때 가장 적극적인 의미의 평화가 도래할 조건이 마련될 것이다. 민족통일은 한반도 평화체제의 가장 자연스러운 지향점이다. 그 당위의 호소력도 커서 남북을 아울러 사람들의 강한 헌신과 열망을 끌어낼 수 있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도 평양 능라도에서 행한 감동적인 연설에서 ‘우수하고 강인하며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민족’을 이야기하면서 70년을 적대하며 떨어져 살았던 우리 민족이 함께 살아야 함을 강조했으리라.

그러나 통일은 쉽게 이루어지기도 힘들고 반드시 바람직하기만 할지도 의문이다. 같은 민족이라고 해서 반드시 하나의 국가를 이루어야 하는 법은 없다. 우리 민족이 단순히 동질성이 약해서 비극적 전쟁을 치르고는 오랫동안 갈라져 살아오지는 않았다. 평화체제를 세우기로 한 지금도, 남북의 이질적인 체제나 현격한 경제적 격차를 생각하면, 통일은 가능하더라도 아주 먼 미래의 과제로 남겨둘 수밖에 없다.

지금과 같은 ‘1민족 2국가’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적극적인 평화가 불가능하지는 않다. 평화의 이상에는 전쟁의 상처와 고통으로부터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 줄 도덕적 질서를 만들어 내려는 고귀한 열망이 담겨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민족이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고 했지만, 냉정하게 보면 인류 일반이든 우리 민족이든 언제나 평화 지향적이기만 하지는 않았다. 평화는 어떤 자연발생적 상태가 아니라 사람들의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고도의 규범적 질서다. 문제는 통일이냐 양국체제냐가 아니라 이러한 평화의 본성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이다.

칸트식으로 말한다면, 참된 평화는 인간의 ‘도덕적 이성’이 폭력적 갈등과 전쟁이 빚어내는 참혹한 비극의 원인과 결과를 제대로 인식하고 성찰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 관건은 서로 갈등하는 당사자들이 서로 다른 처지와 이해관계를 존중하고 평등한 존엄성을 인정하는 지속적 관계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치유하기 힘든 원한과 증오조차도 모두의 공존과 번영에 대한 희망으로 승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평화는 남과 북 모두에서 이런 도덕적 진보를 이루어낼 때 하나의 역사적 성취로서만 가능하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서로의 관계만이 아니라 각 나라 내부의 삶의 양식이 지닌 도덕적 질을 높이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해 나가야 한다.

우리 사회 내부만 보자.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기는 원인과 해법이 분명한데도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을 때 구조적 관계는 폭력적이 된다.

그 폭력은 무엇보다도 통일을 외치면서도 사실은 분단을 악용하며 강화해 온 분단체제 기생 세력들의 불의와 이어져 있다. 그들은 지금껏 국가보안법이 헌법보다 더 상위에 있는 법이라고 우기며 국민들의 인권을 짓밟고 민주주의를 일그러뜨려 왔다. 이러한 불의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일촉즉발의 위기까지 갔던 북한과 미국의 갈등을 중재하여 평화의 길로 이끌 수 있었던 건 단순히 우연은 아니다. 분단의 질곡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상처 입히고 왜곡시켰는지를 잘 알고 있는 우리 시민들의 더 성숙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평화를 추동했다고 보아야 한다. 시민들은 또 그런 열망을 모아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냉전 수구 세력에 대해 분명한 사망선고를 내리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 세력은 죽은 줄도 모르고 정치적 좀비가 되어 지금도 평화를 위한 노력 하나하나를 물어뜯고 있다. 그동안 남북 사이의 냉전을 이용하고 부추길 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끊임없이 동서갈등을 조장하며 거기에 기생해 온 반평화적 정치 질서 자체가 온존하고 있어서다. 이 질서를 제대로 개혁해 내지 못하면 한반도에 적극적인 평화가 정착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한 질서의 혁파는 이제 평화를 지향하는 모든 사람들의 가장 우선적인 도덕적 의무가 되었다.

<장은주 | 와이즈유(영산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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