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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낳는 말, 꼬리 달린 개구리, 등에 삼 척 길이의 털이 난 거북이가 있다고 한다면 믿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은 예는 아무리 무수히 들어도 부족한 반면, 그런 예는 하나만 있어도 충분하다. 그런데 그런 예가 있다. 이 있을 수 없는 것들이 버젓이 논의되고 있는 곳이 조선의 조정이고, 그곳을 한 발짝도 나서지 않으면서 이만하면 되었다고 여기는 이가 바로 조선의 왕이다. <어우야담>의 저자로 알려진 유몽인이 중국으로 사신 가는 이에게 써준 글에 나오는 말이다.

유몽인이 보기에 조선은 참으로 이상한 나라였다. 국론이 사흘도 못 가는데 왕통이 200년 동안 존속되고 있으며, 작은 법마저 무시하고 지키는 이 없는데 어딜 가나 삼강오륜의 교화로 가득하다. 기본적인 경제정책도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는데 어떻게든 먹고는 살며, 방위 체계도 변변치 않은데 국경은 늘 그대로다. 귀신의 술법으로 다스리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렇게 안일하고 느슨하게 아무 일 없는 듯이 살아갈 수 있을까.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신랄한 풍자를 통해서 유몽인이 말하고자 한 것은, 먹고사는 걱정을 넘어서 여유롭게 즐기는 삶과 아침저녁으로 입에 풀칠할 근심에 신음하며 연명하는 삶이 같을 수는 없다는 상식이다. 이빨 있고 발톱 있다고 살쾡이가 호랑이와 같은 것이 아니며, 비늘 있고 지느러미 있다고 미꾸라지나 용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은 아니다. 겉모습이 그럴듯하게 유지된다고 해서 아무런 개선의 노력도 없이 그저 통상 하던 대로 잇속이나 챙기고 의리나 따지며 나라가 해야 할 일을 방기하는 통치 행태에 대한 준열한 일갈이다.

일선 학교에서 교육의 이념과 과정이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되고, 노동 현장에서 노동기본권이 당연한 듯이 묵살되어도 아무튼 잘 굴러가는 나라가 있다. 법을 집행하는 조직에서 초법적 행태가 자행되고, 편의를 위해 절차 따위는 무시해도 좋다는 의식이 팽배한데도 큰 탈 없이 그럭저럭 유지되는 나라가 있다. 정치권력이 교체되었으니 엄청난 변화가 자연히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사회 곳곳에 만연한, 이만하면 되었다고 여기며 이루어지는 부조리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깊이 성찰하고 함께 바꾸어갈 일이다. 있을 수 없는 나라는, 결국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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