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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2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기뻐하고 근심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남들의 평판 때문인 경우가 많다. 특히 각종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서 개인의 사적 영역까지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기 쉽게 된 오늘날, 평판은 사람을 쉽게 띄우기도 하고 급전직하로 내몰기도 한다. 평판을 관리하는 전략이 아무리 발전된다 해도 남들의 마음을 나의 기대에 맞게 끌어오기는 어렵다. 오죽하면 공자가 <논어>의 첫머리에서 군자의 조건으로 내세운 것이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서운해하지 않음’이겠는가.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고려시대 문인 이달충은 평판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잠언인 <애오잠(愛惡箴)>을 썼다. 그 서문에 등장하는 무시옹(無是翁)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나를 사람이라 해도 나는 기쁘지 않고 사람들이 나를 사람이 아니라 해도 나는 근심스럽지 않소.”
평판에 초탈해서가 아니었다. 자신에 대해 평하는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기쁨과 근심의 기준은 평가의 내용이 아니라 그 평가를 하는 사람이 그럴 자격이 있는지에 달려 있다. 그래서 사람을 좋아하고 미워할 자격은 인자(仁者)에게만 주어진다고 하는 것이다.
좋은 사람에게 좋은 평을 받는다면 기쁜 일이지만, 나머지 경우들이 문제다. 분명히 좋은 사람인데 그가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봄이 마땅하다. 하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평판을 받고도 상대를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반면 좋지 않은 사람이 나를 좋지 않게 평하는 경우에는 개의치 않아도 될 뿐 아니라 오히려 기쁜 일이다. 아무에게도 욕을 듣지 않으면서 바름을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정정당당함과 자기합리화 사이의 긴장은 스스로 감당할 몫이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나를 좋게 평하는 경우다. 좋은 평판 앞에서 한없이 무너져 내리기 쉬운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남이 나를 훌륭하다고 평한다고 해서 내가 훌륭해지는 것이 아니고, 남이 나를 형편없다고 평한다고 해서 내가 형편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이것을 잊고 살 때가 많다. 평판으로 인해 일희일비하지 말고 자신을 돌아볼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식상한 말 역시, 막상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평판은 외부에서 주어지지만, 결국 문제의 원인과 해결은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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