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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공간이나 시간이 있다. 내게는 헌책방이 그랬다. 느지막이 아침을 먹고 난 일요일,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헌책방 거리를 순례하곤 했다. 마지막 코스인 단골 서점에 들어서면 아버지와 나는 각자의 구역으로 흩어졌다. 난로 위에 주전자가 놓여 있는 그 서점은 늘 따뜻했다. 내가 좋아하는 구역은 책이 양쪽으로 쌓여 있는 통로의 구석이었다. 체구가 작은 어린이가 들어가기에 맞춤한 자리는 아늑했다. 이 책, 저 책을 들춰보며 사달라고 할 책을 고르다가 읽고 싶은 책을 손에 들고 그 자리에 파묻히던 순간은 평온 그 자체였다. 헌책 냄새만 맡아도 마음이 편해지는 건 바로 그때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고등학교 때 처음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 발을 디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 교보문고에는 천장에 거울 같은 것이 가득 매달려 있었고 그 거울에 내 모습이 비쳤다. 책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고, 그 막대 거울 하나하나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헌책방에서는 느낄 수 없는 종류의 흥분과 경외감에 그 넓은 서점을 구석구석 돌아다녔던 기억이 생생하다.


서울 청계천6가 평화시장 중고서점(헌책방) 거리 (출처 :경향DB)

대학로의 소극장은 또 다른 의미에서 새로웠다. 이렇게 작은 공간에서 어떻게 공연을 하지? 연극이 시작되자 바로 앞에서 연기하는 배우들도, 소품으로 이리저리 바꿔가며 사용하는 좁은 공간도 신기했다. 


방송국 세트장을 처음 본 날은 어떤가? 화면에서 화려하기만 한 쇼의 녹화장은 실제로는 조악해 보이는 소품 투성이였다. 세트 촬영을 아는 것과 직접 그 공간을 보는 것은 천양지차였다. 쇼의 주인공처럼 보이던 가수들도 카메라의 줌인 없이는 우리와 다르지 않고 평범했다.


공간뿐만이 아니다. 화가 나혜석이 일제 식민지 시절에 다녀온 여행 이야기는 충격에 가까웠다. 기차를 타고 만주와 모스크바를 거쳐 파리까지 여행이 가능했다니! 서울~부산에서 멈춰 있는 내 머릿속의 국경은 물론이고, 국경을 넘나들지 못하는 상상력의 한계가 부끄럽기만 했다.


어떤 것들은 한 번 접한 것만으로도 두 번 다시 잊지 못하게 된다. 래퍼 에미넴의 표현대로라면 ‘원 샷, 원 오퍼튜니티(one shot, one opportunity)’인데 꼭 비싸고 검증되고 유명한 콘텐츠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가수 루시드 폴은 언젠가 “어떨 때는 집에서 아주 거칠게 녹음한 초벌 녹음의 감동을, 이후에 최고의 연주자들과 녹음기사, 일류의 녹음실에서 아무리 다시 녹음해도 재현할 수 없음을 너무나 많이 경험”한다고 고백한 바 있다. 


말 그대로 찰나의 그때에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이고 경험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삶을 바꾸는 순간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누가, 언제 그 순간을 경험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일 뿐.


일례로 내가 자란 도시에는 시립미술관이 없다. 버스 노선도에도, 길거리 표지판에도, 소풍 가는 곳에도 미술관은 없었다. 그래서일까, 내게 미술관은 왠지 어렵고 낯선 데다 함부로 가기 어려운 곳이었다. 처음 미술관에 가본 것은 스무 살이 훌쩍 넘어서였고, 유료 전시에 대한 거부감을 극복하는 데에는 좀 더 시간이 많이 걸렸다. 


만약 헌책방처럼 가까이에 자주 드나들 수 있는 미술관이 있었다면, 혹은 내가 다니던 헌책방에 화려한 원서와 그림책이 가득했다면 나는 지금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미술관에서 교육을 한 번이라도 받은 아이들이라면 어떨까? 이 아이들은 미술관을 어려워하는 대신 자기가 물감 칠하며 뒹굴었던 공간, 티셔츠 입고 뛰어다니던 공간으로 기억할 것이다. 언젠가 자신의 아이들을 데려와 “여기가 바로 엄마가 다섯 살 때 낙서하고 놀던 곳이야”라며 이야기해 줄 수도 있을 터이다. 미술관은 물론 좋은 예술작품을 만나는 곳이지만 아기자기한 추억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미술관도 충분히 멋지지 않은가?


내게 헌책방이 어린 시절의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처럼 누군가에게 미술관은, 혹은 다른 그 어떤 공간이나 시설도 그럴 수 있다. 우리는 지금껏 어떤 시설을 ‘만드는’ 데에만 집중해왔다. 이제 그 공간 안팎에서 삶을 바꾸는 순간이 생길 수 있도록, 추억과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다른 상상력을 발휘할 때가 아닐까.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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