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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환경운동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불문율이 생겼다. 농사 없는 환경운동은 말짱 도루묵이라는 것인데,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이런 말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농업의 환경 역할이 크다는 방증이 되겠다. 이를 농사의 공익적 가치라고도 하고 환경보전적 기능이라고도 한다.

농경제학에서도 농업의 두 가지 측면을 중요시하는데, 하나가 농산물의 생산성이고 다른 하나는 환경보전적 기능성이다. 환경보전적 기능이라는 개념이 그냥 등장한 게 아니다. 농업의 ‘타락’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현대 농업은 공익성을 많이 잃었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소농’이 등장하게 된다. 소농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농사의 본래 의미와 뜻을 되새기면서 농업이 가진 공익성과 환경보전성을 복원하고자 하는 것이다. 현대농업의 과도한 기계화와 화학화, 즉 산업화는 박근혜 정부에 들어와서 6차 산업화니 스마트 농업이니 하면서 더 강화되고 있다. 정보기술과 결합하면 농업은 첨단산업이 된다면서 빅데이터니 하면서 파종과 수확은 물론 병충해까지 정보기술이 해결한다고 강조한다.

착유 로봇으로 우유를 짜고 드론으로 찍은 수많은 항공사진을 인공위성과 교신하면서 농장을 경영하는 시대가 열린다고 한다.

세인의 관심을 끌었던 인공지능 ‘알파고’와 함께 농업에서의 로봇공학과 정보기술은 더 빠르게 접목될 것으로 보인다.

울산 울주군 논에서 김상현씨가 트랙터를 이요해 벼를 베고 있다._연합뉴스

그러나 최근의 큰 흐름은 소농의 가치와 필요에 주목하는 것이다. 생명평화운동에서도 농업이 빠지면 안되는 것으로 여기고 있으며 영성 수련과 심리적 정화 과정에도 농사가 등장했다. 교도행정에도 농사가 들어가고 있으며, 교육 현장에까지 농장이 생겨나고 있는 실정이다. 모든 대안학교에서 농사가 정규과목으로 들어간 것은 이 학교가 대안학교냐 아니냐의 판별 기준이 될 정도다.

농사 행위의 자연치유 효과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래서 도시농업, 농부교실, 귀농학교, 농사대학 등의 과정이 민간과 공공 영역에서 빠르게 확산되어 가고 있다. 종교단체들이 이런 흐름에 참여한 지는 오래되었다. 불교, 천주교, 기독교, 원불교는 대표적인 사례다.

5대 종단 중 하나인 천도교에서도 농부학교를 열고 있다. 종교단체까지 나서서 농부학교를 만드는 것은 전 지구적 복합오염 사태를 맞은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생명, 생존, 생태 문제의 근원이 농사라는 인식이 널리 공유되는 현상이라 하겠다. 농사에서 종교의 가르침과 일치점을 발견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농사라고 해도 좋고 자연이라고 해도 좋다. 농사만큼 자연에 바짝 다가간 것이 없으니까 하는 말이다. 사실 농사(자연) 본연의 이치와 기능은 종교적 교의와 신기할 정도로 일치한다.

그래서 많은 현자들은 대자연 그 자체가 신이고 한울이고 부처라고 주장하기도 하는 것이다. 산업화된 농업이 아니라 ‘소농’에서만 통하는 얘기다. 스마트 농업이나 농업의 6차 산업화에서는 농산물의 상품성 외에 이와 같은 효과와 역할은 기대할 수 없다. 일제강점기 시대에는 독립과 척왜가 시대적 과제였다면 지금은 단연 환경이고 생태며 영성이다. 그 중심에 농사가 있다. 기후변화의 가속화 시대에 자급생활공동체의 구축은 충분히 종교적 과제가 될 수 있겠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바뀌는 것은 매우 지난한 과제다. 물질의 풍요와 편리, 그리고 자본의 유혹과 방해를 다 넘어서야 비로소 가능하다. 그래서 소농을 혁명이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귀농의 바람이 점점 거세고 귀농교육을 하는 곳이 크게 늘었다. 다만, 귀농교육의 내용이 다른 만큼이나 귀농의 방향도 다르다. 어떤 귀농이어야 하는지는 우리나라의 농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 나아가 우리 문명의 미래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와 궤를 같이할 때 우리는 희망을 키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희식 | 귀농정책 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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