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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2학년 10반’, 그 교실에 있던 친구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지난해 작가들이 그이들 자취를 좇아 글을 썼다. 앞으로 세상과 만날 책 <짧은, 그리고 영원한> 제10권을 먼저 읽었다.

보현은 틈만 나면 아빠 볼에 쪽, 엄마 입술에 쪽 입을 맞췄다. 요리사에서 건축가를 거쳐 실내 장식가로 진로를 굳혔다. 엄마가 시집올 때 해 온 고가구를 고친 솜씨가 제법이다. 지혜가 원하면 엄마는 발레든 노래든 피아노든 그림이든 힘닿는 대로 가르쳤다. 지혜는 쉽게 배우고 놀이처럼 즐겼다. 시립 합창단원이 되어 요양원으로 위문 공연도 다녔다. 다영은 호기심과 질문이 많았다. 말하기를 좋아해 ‘30분 말 않고 가만히 있기’ 벌을 힘들어 했다. 다영은 갖가지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깨알 일기와 깨알 편지 쓰기를 좋아했다. 민정은 어릴 때 이마를 다쳤다. 진정시키려 의사가 치료하면서 말을 걸었는데, 민정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웅변 학원에서 배운 걸 읊더니 “이 연사 힘차게 외칩니다”로 마무리했다.

송희 꿈은 엄마랑 행복하게 살기다. 한글 파워포인트·멀티미디어 제작·인터넷 정보검색·프리젠테이션 등 국가공인 정보통신기술 자격증을 땄다. 고3 마치면 바로 취직할 생각이었다. 슬기는 친구 생일에 미역국을 끓여 보온병에 담아 갔다. 밸런타인데이에는 초콜릿을 만들어 큰아빠, 이모, 사촌 동생, 친구, 이모 직장 동료까지 챙겼다. 부모를 닮아 나누길 좋아했다. 어느 날 유민은 동생과 빵집에 갔다. 먹고 싶은 거 다 먹어 보자며 쟁반에 빵을 산더미처럼 쌓았다. 치즈빵, 초코소라빵, 슈크림, 추러스… 싹 비운 게 놀라워 두 자매는 깔깔 웃었다.

단원고 2학년 7반에서 학부모들이 세월호 희생 학생들의 단체사진을 보고 있다._경향DB


주희는 삼인방 친구들과 중앙동에서 만나 닭갈비 정식을 먹고 노래방에 갔다. 스티커 사진도 찍어 나눴다. 친구가 진로 문제로 막막해 하면, 눙치듯 농담하며 다시 시작할 용기를 주었다.

할아버지 생신날, 정슬이 세상에 나왔다. 갓난아이가 눈을 말똥말똥 뜨고 할아버지를 보는데 어찌나 예쁘던지. 이슬을 머금은 듯 맑은 눈, 그래서 이름이 정슬이다. 가영은 우아한 달이·팽이와 살았다. 옆집 언니에게서 얻은 노란 알에서 깨어 두 해 자란 달팽이들이다. 가영은 동물원에서 구렁이가 예쁘다며 몸에 두를 정도로 동물을 좋아했다.

경민은 두 언니에게 온통 사랑받았다. 큰언니와 띠동갑인 막내였다. 길에서 죽은 생쥐를 보고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불쌍하다며 손에 품고 집으로 온 일도 있었다. 경주는 친구들이 준 편지를 죄다 모았다. 별말 없는 종이쪽도 간직했다. 친구들은 경주를 고민 상담소, 의리파, 분위기 메이커라 했다. 평생 불타는 우정을 약속했다.

다혜와 엄마가 매운 닭발을 먹는데 콧잔등에 땀이 송송. 공주야, 공주야. 엄마는 다혜를 공주라 불렀다. 친구들이 웃는대도 엄마는 공주 맞댄다. 성대모사에 모창에 인기 절정 공주다. 단비에게 드디어 자기 방이 생겼다. 엄마, 아빠가 열심히 일하고 알뜰히 아껴 집을 마련했다. 단비는 설렜다. 어떻게 꾸밀지, 무엇을 할지. 그리고 감사했다. 엄마, 아빠가 흘린 땀에.

소진은 스스로 나서서 동생을 돌보았다. 일찍 출근하는 엄마 대신 등굣길에 동생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하굣길에 데려왔다. 누나표 달걀말이, 비빔국수, 떡볶이도 쓱쓱! 해주는 손 다친다는 엄마 말에도 바느질틀을 돌렸다. 자투리 천으로 필통과 인형을 만들고, 친구들 치마를 고쳤다. 학교 행사 공지가 나면 친구들과 동영상과 연극을 만들어 참여했다. 수정은 토요일마다 엄마와 대형마트로 장을 보러 갔다. 엄마와 딸은 걷는 걸 좋아해 돌아올 때만 버스를 타고 한 시간 걸리는 길을 늘 걸었다. 수정이 꼭 짐을 들었다.
혜원이 가톨릭대 청소년 캠프에 다녀왔다. 장애인 이동을 주제로 학교를 살피니 휠체어가 못 가는 곳이 많았다. ‘차별’을 눈으로 본 뒤 어려운 사람을 돌보겠다는 꿈이 또렷해졌다.

책에 담지 못한 한솔과 은별까지, 모두 돌아와 삶이라는 천에 무수한 이야기를 수놓아야 마땅했다. 자라는 동안 누군가 이름을 불러주고 그 부름에 답했을 이들. 4월이어도 4월이 아니어도, 생생한 저이들을 마음에 새겨야겠다.


박수정 | 르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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