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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석에는 우리 식구만 셋이 모이게 되어서 진짜 제대로 된 차레상을 차리고 싶었다. 그동안 명절 때마다 겪었던 의미 없는 의례와 출처를 알 수 없는 음식들 때문에 명절 자체에 흥미를 잃어왔던 터라 내 소신과 내 정성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나는 미리 알아본 바가 있는지라 그 도움말대로 하나씩 준비했다. 내가 알아본 것은 두 방향이었다.

하나는 차례가 아니고 차레라는 것이다. 차례(茶禮)는 한자말의 훈에 있듯이 차를 올려 제사를 지낸다는 것으로 물이 탁해서 늘 차를 달여 마셨던 중국얘기이고 앞 뒷산에 약수가 철철 흐르는 우리나라는 차례가 아니라 차레를 했다는 것이다. 차레는 채우고 비운다는 뜻이다. 모든 제례는 결국 채우고 비우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비워내고 나서 채우는 게 아니라 맑고 밝은 사랑과 용서와 포용으로 채워나가면 탁하고 어리석고 욕심스러운 것들이 그냥 비워진다는 얘기다. 참 의미심장하다.

다른 하나는 간소하면서도 정성스러움이다. 이것은 동학연구가인 김용휘 교수의 도움말에 전적으로 따른 것으로, 내가 동학의 가르침대로 ‘청수일기’(허례허식을 버리고 맑은 물 한 그릇으로 장독대 비손하는 마음)와 ‘향아설위’(죽은 귀신이나 벽을 향해 상차림을 하는 게 아니라 한울로서의 나 자신을 향해 상을 차리는 것), 그리고 ‘천지부모’(하늘, 땅, 세상 만물이 한 부모) 정신으로 상을 차리고 싶다고 기준을 제시했었는데 김 교수는 딱 한마디로 대답을 해줬었다. ‘간소하고 정성껏’이라고.

이런 두 방향에서 차레를 구체화하는 것은 내 몫이었다. 잠시 생각을 하다가 차레상 뒤쪽에 하얀 종이를 3면으로 접어 세우고는 각 면에 ‘조상님’, ‘큰 스승님’, ‘만물만상’이라고 썼다. 아버지와 어머니 또는 고조부까지만 모시려니 허전했었다. 우리 직계 조상님뿐 아니라 세상의 큰 스승들의 가르침으로 나를 채우고 싶어서다. 여기에 후손 없는 귀신이나 사람의 형상을 하지 못한 생물, 미생물도 다 모시고 싶은 마음도 담았다.

새 물과 새 차를 넣어 뜨겁게 우려낸 보이차 세 잔을 세 위패 앞에 놓았다. 보이차를 올릴 때는 한 사람이 한 잔씩 찻상에서부터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신부걸음으로 조심조심 걸어서 왔다. 보이차 앞쪽에는 새로 출간된 내 책 한 권, 유기농 사과 한 알을 놓았다. 이게 차레상의 전부였다.

그 다음 진행순서도 식구들이 즉석에서 정했다. 한 사람씩 차레상 앞에 나가서 서원을 올리기로 했다. 어떤 사람은 무릎을 꿇었고 어떤 사람은 가부좌를 했다. 식구와 이웃, 사회와 세상에 대한 서원을 올린 사람도 있었고, 조상과 스승들의 큰 가르침에 감사와 고마움을 구구절절 표한 사람도 있었다.

절은 안 했다. 음식과 위패에 절을 하는 것보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하자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의 공개서원을 끝내고 삼각점에 마주 서서 맞절을 했다. 1배만 할까 아니면 3배를 할까 물으니 다들 3배를 하자고 했다. 그래서 한 동작 한 동작을 또박또박 정성을 다해 서로에게 3배를 올렸다. 그러고는 서로를 깊이 포옹하면서 덕담을 나눴다.

차레상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푸짐하게 차려진 밥상 앞에 앉은 우리는 덕담을 이어나갔다. 아들이 대행 스님의 <한마음 요전>에서 읽은 예화를 소개했다. 포수가 사냥을 나서서 들오리 한 마리를 쏘았는데 어떤 한 마리가 도망을 가지 않고 피 흘리는 오리를 얼싸안고 울더라는 것이다. 죽은 오리의 짝꿍이었다. 이를 보고 포수가 총을 버리고 사냥을 그만두었다는 일화였다. 목숨을 걸고 사랑을 실천한 짝꿍오리 덕분에 숲에는 평화가 찾아왔다고 한다. 이런 유의 덕담을 나도 하나 나누었다. 식사를 마치고 어머니 산소를 찾았다. 어머니 무덤 앞에서 가져간 음식에 따가운 볕을 발라가며 안 남기고 다 먹었다. 중학교 때 도시락에다 딱 밥알 하나를 남겨왔다가 어머니에게 부지깽이로 혼이 났던 기억을 되새기며.

전희식 | 농부, ‘소농은 혁명이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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