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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교동삼거리 버스정류장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골목을 몇 번 꺾어 들면 ‘연세대 김대중 도서관’이 나온다. 그곳 지하 1층 국제회의실에서 지난 9월1~2일에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제3차 청문회가 열렸다. 큰 주제는 ‘4·16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가의 조치와 책임’이었다.
들을 청, 들을 문. 청문회는 증언을 듣는 자리다. 당연히 말해야 할 이들이 있어야 한다. 말하는 이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만을 말하겠다고 사람들 앞에서 먼저 다짐해야 한다. 특별조사위원회가 ‘국가의 조치와 책임’에 대해 따지려 참사 당시 해경·해군·해수부·경찰청·청와대 관계자에게 증인 신청을 했다. 하지만 한 명도 그 자리에 오지 않았다.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와 시민사회·종교계 원로들이 6일 서울 광화문광장 단식 농성장 앞에서 세월호특별법 개정과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을 요구하는 비상시국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지막 날 마지막 시간, 방청인 발언에 나선 김성묵씨는 오지 않은 증인을 향해 말했다. “그 진실이 얼마나 무섭길래 나오지도 못하고, 외면하고, 가리려고 덮으려고 합니까?” 김성묵씨는 세월호에서 소방호스로 학생들을 끌어올려 구했던 이다. “아이들이 저한테 ‘아저씨 어떻게 해요’라고 물었을 때 방법을 몰랐습니다. 뭘 해야 될지 몰랐고, 무슨 말을 해줘야 될지 몰랐습니다. 제가 부모님한테 정말 죄송하다 느끼고 죄스러워서 지금까지 871일, 그사이에 부모님들 눈을 쳐다보지 못했던 게 어쩌면 그 아이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 그 아이 질문에 답변을 못했던 것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무게를 잴 수 없는 말, 지금까지 그가 혼자 지고 온 짐을 앞으로도 계속 혼자 져야 할까. 앞서 그가 한 물음은 오지 않은 증인한테만 해당하는 게 아니겠다.
참고인으로 나온 유가족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가로막히고 감춰진 시간과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전 국민이 “총력을 다해 구조에 나섰다”는 뉴스 앞에서 간절히 기도할 때 실상 현장은 그렇지 않았다. 민간 어선을 구해 사고 해역으로 향한 가족도 배 안에서 그 뉴스를 보았다. “현장에 가니 아무것도 않고 있는데 너무 놀라웠다. 기자들한테 구조하지 않는 현실만 그대로 보도해 달라 했는데 돌아와서 방송하지 않았다.”
‘피해자 처지’에서 ‘피해자가 바라는 바’를 살펴야 할 경찰은 참사 첫날부터 피해자를 ‘감시’하고 ‘동향을 관찰’하고 ‘성향을 분석’했다. 피해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했고 ‘무시’하고 ‘고립’시켰다. 고립을 벗어나려는, 진실을 찾아나서는 움직임은 ‘가로막고 틀어막았다’. “난민들이 겪는 아픔, 보호받지 못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는데 지금은 아니라 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오지 않은 증인들을 빼고도 청문회에서는 알아야 할 일이 많이 나왔다. 인터넷으로 다시 볼 수 있다. 유가족을 비롯한 피해자 말은 꼭 보고 듣고 읽었으면 싶다. 그이들 말 바탕에는 ‘생명의 가치를 지키겠다’는 마음이 자리한다. 그중 하나, 여기 새겨둔다. 단원고 2학년5반 박성호의 큰누나 박보나씨가 한 말이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의 형제자매는 230여명이 있습니다. … 우리는 왜 아직도 내 형제들을 죽게 한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지, 미안하다고 모두 어른들의 잘못이라고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던 어른들은 지난 2년간 무엇을 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 희생된 학생들의 형제자매이고 친구인 우리, 우리 세월호 세대들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똑똑히 보았고 기억합니다. 우리의 연대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고통의 시대가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는 영원히 기억할 것이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번 참사로 형제자매를 잃고 다짐했습니다. 잘못을 저지르고 사과할 줄 모르고, 자신의 일에 책임지지 않고 도망가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하고, 내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는 그런 어른은 되지 않기로, 그리고 공감하지 못하는 괴물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 특조위도 인양도 모든 게 침몰하고 나면 우리는 그 긴 시간을 어떻게 버티며 살아야 할지 막막하고 두렵습니다. 시민분들, 제발 이번 청문회가 마지막이 되지 않도록 여러분이 함께 만들어주신 특별법과 특조위가 그대로 침몰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박수정 | 르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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