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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는 ‘전라도닷컴’이라는 잡지가 있다. 지금껏 15년쯤 이어진 잡지. 대전에는 ‘토마토’, 수원에는 ‘사이다’라는 잡지가 있다. 지난주에 이 잡지를 펴내는 사람들, 그리고 또 다른 지역에서 책을 내는 잡지사와 출판사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가 있었다. 전국에서 알음알음으로 책 낸다는 집은 얼추 모였다고는 하지만, 도나 광역시마다 고작해야 한둘. 한국의 출판사와 잡지사는 거의 다 수도권에 있다. 수도권과 그 나머지, 이런 구분만이 실감이 있다. 출판사의 숫자를 헤아려봐도 마찬가지다. 지방엔 손으로 꼽을 만큼이다. 그래서 상추쌈출판사는 경남 하동 촌구석에 있지만, 출판사를 운영하는 조건은 부산이나 광주 같은 곳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시민들이 책을 읽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요즘 서울이든 지방이든 어디에서나 작고 새로운 책방들이 생겨나듯, 지방에서 책을 내는 출판사도 늘어나고 있다. 하나같이 작은 출판사들이다. 새로 생긴 책방들이 저마다 주인장 성격이 드러나게끔 고르고 고른 책을 늘어놓는 것처럼, 지역에 있는 출판사들도 그렇게 책을 펴낸다. 요즘엔 책을 찍는 인쇄소나 제본소에 직접 가지 않아도 일이 굴러가니까, 지역에 있는 것이 책 만드는 데 큰 어려움이 되지는 않는다. 그것보다 전국 어디든 다니기가 편해지고, 사람들이 오르내리고 하면서, 가까워지는 만큼 자연스레 경계가 사라진다. 고속도로를 따라 서울로 가는 길, 어느 길로 가든, ‘이제 서울 언저리네’ 하는 마음이 든다. 그 범위가 점점 넓어진다. 이제 지방의 작은 도시든 시골 촌구석이든, 실시간으로 서울의 눈높이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고 있는 지역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누군가에게 자기 동네를 말할 때에도 ‘서울에서 몇 시간 거리’ 하는 설명이 필수로 붙는다. 하지만, 지방에서 살고 있으면, 외국 나간 만큼은 아니어도 슬슬 눈길 가 닿는 데가 달라지고, 생활패턴도 천천히 그 동네 방식에 맞춰진다. 같은 저자와 일하고, 같은 주제로 책을 고민해도, 시골에 내려온 뒤로는 짚고 넘어가는 대목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렇게 지역에서 살아가는 출판사가 되어서, 자기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지역 잡지사들끼리 오랫동안 모임을 하다가, 이참에 출판사들까지 불러서 모임을 꾸리고, 새로운 일을 작당했다. 각 도에 한둘 있는 출판사들이니 얼마나 모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모임 시작부터 지르기를 내년 5월 제주에서 ‘한국지역도서전’을 열기로 했다. 전시회만 여는 게 아니다. 출판상도 주기로 했다. 지금껏 해 온 전통 있는 도서전도 해마다 사람들 발길이 줄어든다는데, 게다가 서울도 아니고, 제주에서 하겠다니. 슬그머니 발을 뺄 타이밍을 용의주도하게 계산하는 사이, 모든 것이 후딱 결정되었다. 이야기 중간에 지역출판상 어쩌고 하는 대목이 있었는데, 그 이야기가 귀에 쏙 박혀서는 때를 놓쳤던 것이다. 행사를 치르는 돈은 그때 그때 형편에 따라 마련하더라도, 출판상만큼은 어디서 기금을 받거나 주최 측에서만 마련하는 게 아니라 이 일을 널리 알려 1000명한테서 1만원씩 모으자, 그래서 그 1000명 마음까지 보태서 상을 주자는 것이었다. 출판상을 뽑는 투표는 아무나 할 수 있게 하고, 1만원 보탠 사람은 투표를 세 번쯤 하게 하자는 이야기도 들리고, 출판상 후보가 될 책을 널리 모으는 일에 대한 이야기도 들렸다. 평소에 책쟁이로 조용하기만 하던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재밌어 하는 순간이었다. 지역에서 책을 내고, 이야기를 담는 일에 기운을 북돋기에는 꽤나 재미있는 상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출판사 또한 저마다 자기 식대로 살아가는 것이라면, 수도권에서 벗어나는 삶은 어쨌거나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가능성은 확 줄어들고, 그것 말고 다른 즐거움을 누릴 가능성이 많이 열린다. 당장 임차료만 계산해 봐도 알 수 있다. <보리 국어사전>을 펴낸 윤구병 선생은 사전을 펴낼 때 사전에 싣는 말을 덜어내는 것이 더 어렵다고도 했다. 이를테면 ‘플로피 디스켓’ 같은 말은 이제 손가락 사이로 흩어진 말이 되었다는 것. 서울과 같은 공간 한복판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던 덜어내는 일이, 아무래도 여기에서 더 잘 보이는 게 있다. 그렇게 살게 되고. 게다가 제주에는 재미난 서점도 작은 출판사도, 알맹이가 꽉꽉 들어찬 책쟁이가 늘어나는 게 눈에 보일 만큼이었으니까, 일찌감치 내년 5월 일정을 비워 놓으시는 것도 괜찮겠다.
전광진 | 상추쌈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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