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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온갖 기이한 소문을 진실로 확신하는 사람들이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야말로 본보기다. 그는 15일 오전(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선거가 조작됐기 때문에 그(바이든)가 이겼다”면서 “선거일 밤에 일어났던 모든 기계적 결함은 정말로 표를 훔치려다 들킨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취재를 마친 현지 언론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트럼프와 그의 지지층이 그동안 적립해놓은 가짜뉴스의 목록은 꽤 길다. 가령,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에 대해 그는 줄곧 “중국 정부가 미국 경제를 파멸시키려고 계획한 사기극”일 뿐이라고 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클린턴 부부가 피자가게에서 아동 성매매 사업을 성업 중”이라는 황당무계한 소문을 퍼트리기도 했던 세르노비치(트럼프 열혈지지자)에게 “퓰리처상을 줘야 한다”(농담 아님)고 했을 정도다. 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가짜뉴스의 생산자로 전락한 사람들의 심리를 개인적 차원에서 분석할 수는 있다. 인지부조화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자신의 신념과 행동 간 불일치 때문에 생긴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부조화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는데, 트럼프 진영의 행동은 부정선거 의혹 제기를 통해 부조화를 최소화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확증편향 이론인데, 원래 자신이 믿고 있는 신념에 대한 입증사례만을 선별적으로 수용하려는 성향을 말한다. 유독 박빙의 선거구에 대해서만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행동이 바로 그것이다. 이 성향은 자신의 실제 수행력에 비해 자신의 능력을 더 높이 평가하는 과신편향과도 통한다. “우리가 질 리가 없다”는 태도. 트럼프 진영이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집단 차원에서 트럼프 진영의 기이한 행동을 이해해보면 어떨까? 2016년 3월 대한민국에서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역사적 바둑대국이 펼쳐졌다. 이 기념비적 사건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우리 연구팀은 흥미로운 사회심리학 실험을 설계했다. 우리는 궁금했다. ‘대체 어떤 네트워크 특성을 지닌 사람들이 대국 결과를 올바로 예측할까?’ 그래서 피험자들에게 승패를 미리 예측하게 하고 자신들의 ‘에고 네트워크’를 제출하도록 했다. 에고 네트워크는 자신의 절친 5명까지의 이름을 적게 한 후 그들 간의 관계를 표시한 네트워크다. 가령, 어떤 이의 절친이 다섯 명 있는데 그들이 모두 서로를 잘 아는 사이라면, 그/그녀의 에고 네트워크의 밀도는 1이라 할 수 있다. 반면, 그들이 모두 절친이긴 하나 서로를 모른다고 한다면 밀도는 0이다(특이한 성격의 소유자).

우리 가설은 밀도가 낮은 사람일수록 더 정확한 예측을 한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자신의 친구들이 서로를 모르면 모를수록 그만큼 서로 다른 의견을 낼 여지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정확한 예측을 위해서는 다양한 종류의 입력 정보를 받는 게 중요하다. 반면, 밀도가 높은 사람은 그/그녀의 절친들도 서로 친구들이니 의견 동조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대국 결과는 알파고의 4 대 1 압승으로, 충격 그 자체였다. 전문가와 일반인들의 예상과는 정반대의 결과였지만 우리 연구팀에겐 좋은 소식이었다. 우리 가설을 검증하기에 가장 좋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예상대로 알파고의 승리를 예견한 소수의 사람이 있었고, 그 소수의 에고 네트워크를 분석해보니 우리의 가설대로 밀도가 낮은 사람들이었다. 밀도가 낮은 사람들은 알파고가 이길지 모른다는 식의 이견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반면, 밀도가 높은 사람들은 새로운 정보와 의견을 듣기 힘든 폐쇄된 네트워크 속에서 의견의 동조를 경험했을 확률이 높다.

가짜뉴스의 생산자나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내 자신의 편향을 제거하는 것만으론 충분치 않다. 내 주변인들이 어떤 식으로 내게 입력을 주고 있는지도 중요하다. 네트워크 밀도가 높으면 그 입력은 압력이 되고 그 압력은 기이한 현실 인식을 만들어낸다. 입력이 모두 우리 편이라 같은 목소리로 증폭돼 들어오기 때문이다.

흔히 사업가, 관료, 정치인 중에 사람들을 몰고 다니는 분들이 있다. 좋게 말하면 지지 세력이지만, 나쁘게는 가신 집단이다. 자신을 지지하고 돕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으니 큰 힘이 될 수 있겠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예스맨들로 단 한 가지 목소리만 낸다고 상상해보라. 그 집단은 잘못된 판단으로 나아가 결국 자기네들끼리 진하게 공감하는 쪽으로 나아가기 쉽다.

그렇다면 해결 방안은 있을까? 무턱대고 팩트 폭격 방식으로 교정하려 들면 역효과가 난다. 가령, 보수주의자에게 그들의 신념에 반하는 진실(증거)을 내밀면 오히려 자신의 보수 신념을 더 강화하는 쪽으로 간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런 진실을 반복적으로 접하게 되면 사람들이 어느 순간 진실로 돌아선다는 연구도 있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성향을 강화해주는 알고리즘 사용을 줄이는 방법이다. 소셜미디어나 동영상 공유 플랫폼은 사용자의 취향을 파악하여 어떻게든 사용시간을 늘리게끔 만드는 알고리즘을 현재 구동 중이다. 아무 생각 없이 이 서비스를 계속 이용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새 자신과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선호하는 것들을 주로 접하게 되고, 그로 인해 원래 가지고 있던 성향은 더욱 고착화될 수 있다. 트럼프와 그의 진영만을 팔로잉하면 그들과 비슷해지기 마련이다.

결국 답은 열린 마음과 다양성 추구일 것이다. 딴죽을 허하지 않고는, 누구든 어떤 조직이든 가짜뉴스의 채널이 될 수 있다. 회의하고 근거를 찾으려는 습관, 즉 ‘과학적 정신’이야말로 탈진실의 시대를 이길 힘이다. 주변에서 회의적인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달라서 내쳤기 때문이라면, 그것은 심각한 위험 신호다.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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