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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대표 경제정책이라 알려진 소득주도성장이 사면초가에 처했다. 언론은 연일 이전보다 더 나빠진 고용과 분배지표를 거론하며 맹폭에 나서고 있다. 야당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포기하고 경제정책 담당자를 교체하라며 으름장을 놓는 와중에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은 최저치를 경신했다.

지표만 놓고 보면 할 말이 별로 없게 된 것도 사실인데, 대통령은 “우리는 올바른 경제정책 기조로 가고 있다”고 단호한 입장을 재확인하는가 하면, 장하성 정책실장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더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야당은 청와대의 이런 입장에 대해 ‘국민과의 전면전 선포’라고까지 비판하고 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뒤)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인사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해 더 세밀한 검토와 보완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특히 외국에서는 ‘임금주도성장’이라고 불리는 정책이 한국에서는 자영업 비중이 높은 점을 고려해 ‘소득주도성장’으로 변형되었음에도 결과적으로 자영업자가 1차적 피해자가 된 점. 소득주도성장의 선순환 효과가 수학적으로는 발견되지만 실제 시장에서 어떤 메커니즘을 거쳐 나타나게 되는지 구체적인 설명이 미흡한 점.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주도성장의 극히 일부라고 말하지만 다른 정책수단들은 무엇이며 얼마나 잘 시행되어 왔는지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 소득주도성장은 단순한 성장정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경제·사회정책의 종합 패키지인데 이를 위한 사회적 합의의 노력이 지지부진한 점. 이런 것들은 시급히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소득주도성장이 단칼에 폐기되어야 할 정책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기업 투자가 성장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고 양극화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비판은 난무하지만 대안은 마땅치 않은 형국이다.

소득주도성장 논란을 지켜보며 우리 사회의 거버넌스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주요 정책을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설계하고, 토론을 거쳐 정책에 합의하고, 일단 합의가 이루어지면 일관되게 추진하면서 정책현장의 반응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능력 말이다.

우리가 성장률 하락을 겪어온 것은 어느새 25년이 되었다. 경제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1990년대 초반부터 시작해서 해마다 0.2%, 한 정부의 임기 5년이 지날 때마다 1%씩 법칙적으로 떨어져왔다. 25년이 지나는 동안 9%대 성장률은 2%대로 추락했다. 단기적인 경기하락의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 추세이고 구조적 문제이다. 이것을 반전시키지 못하면 2030년대 마이너스 성장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월별·분기별 지표를 놓고 일희일비할 일도 아니고, 정권을 지키기 위해 무조건 옹호하거나 정권의 힘을 빼기 위해 무조건 트집 잡을 일도 아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걱정스럽다. 일차적으로 정부의 책임이 있다. 소득주도성장이 필요한 시대적 배경과 진정성을 이해할 수는 있으나, 주류 성장이론에 비해 검증이 부족한 이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 세심한 준비와 종합적인 고려가 필요했다. 장기적 하락 추세를 뒤집기 위해 결단이 필요한 시기임을 알리고, 예상되는 고통은 무엇이며, 그 고통을 줄이기 위해 정부는 어떤 대책들을 세울 것인지 미리 설득하고 합의해야 했다. 정책의 한 축이 되어야 할 각 정당들의 반응도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지나간 정부들에서도 늘 그래왔듯이, 대선에 진 야당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새 정부의 정책실패가 드러나기만을 기다린다. 그러다가 공격거리가 생기면 그 부분만을 선정적으로 부각하면서 최대한 상처를 낸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불장난’ ‘세금중독’ ‘소주방(소득주도성장 3인방)’ ‘무데뽀’와 같은 비판들은 귀에 쏙쏙 들어오고 입에 착 붙을지는 모르지만 합리적인 정책을 만드는 데에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구체적인 대안과 예상되는 정책효과를 놓고 벌이는 치열한 비판은 찾아보기 어렵다. 차기 집권의 가능성을 높여줄지는 모르겠지만 25년 장기 하락추세를 뒤집는 데는 방해가 됐으면 됐지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여당도 마찬가지다. 당대표 선출이라는 커다란 정치적 이벤트가 있었다 하더라도 문재인 정부를 지키자는 것 이외에 어떤 자기 성찰이 있었는가.

정치인들만 탓할 일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무조건적 비토 세력과 무조건적 지지 세력이 낳고 있는 폐해를 이제 진지하게 고려해보아야 할 때가 되었다. 사회적 합의의 산실이 되어야 할 노사정대표자회의는 4개월 동안 서로 만나지도 않았다. 사회적 합의 없이 소득주도성장은 성공할 수 없다. 합리적인 정책을 만들고 합의하는 능력이 절실하다. 이것이 없다면 어떤 정책도 25년 장기 하락 추세를 뒤집을 수 없을 것이다.

<장덕진 |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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