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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논란을 지켜보는 심정은 착잡했다. 노·사·언론 할 것 없이 입 달린 사람은 누구나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에 대해 맹비난을 퍼부었다. 특히 편의점 업주 등 소상공인들의 최저임금 불복종 운동은 평소 편의점을 드나들며 24시간 영업하는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삶을 영위하는지 궁금해하던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공감을 얻는 분위기다. ‘을들의 전쟁’이라는, 씁쓸하지만 부인하기도 어려운 이름이 붙었고 결국 대통령 지지율은 12%포인트가 빠졌다.

이대로라면 최저임금 문제는 해법이 없을 것이다. 편의점 업주들이 나를 잡아가라고 나선다면 어찌할 것인가. 그들을 처벌하면 정치사회는 절단날 것이고 처벌하지 않으면 최저임금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문제는 해법이 없는 일들이 최저임금뿐이 아니라는 점이다. 부동산, 교육, 증세, 통일비용, 난민 문제 등등 그 목록은 끝이 없다. 어떻게 해야 하나.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주요 정책들은 최소 10년 이상의 연도별 시뮬레이션이 함께 나와야 한다. 우리 사회 갈등 사안의 상당수는 시간축을 길게 잡고 보면 전혀 다르게 보이는 문제들이다. 지금은 엄청난 비용을 치르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못 막게 되었다고 후회할 사안들, 혹은 지금은 집단 간 이익다툼의 문제로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상생의 문제인 경우들이다. 더구나 세계 최고의 고령화 속도를 감안할 때, 같은 정책이라도 지금의 의미와 10년 후의 의미는 전혀 달라질 수 있다. 지금 어떤 정책을 하면 향후 10년간 해마다 무슨 변화를 겪을 것이고 하지 않으면 10년 후 어떠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점을 정교하게 시뮬레이션하고 국민과 소통해야 한다. 이런 증거기반 정책을 가지고 대통령이나 책임있는 당국자가 진정성 있게 소통한다면 이해해줄 국민은 훨씬 많아질 것이다.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에 소속된 편의점주들이 16일 오후 서울 성북구 보문동 영광빌딩에서 전체 회의를 열고 최저임금 차등적용과 가맹수수료 인하 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한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 권도현 기자

둘째, 급하더라도 정책의 순서를 지켜야 한다. 최저임금이 왜 이렇게 뜨거운 감자가 되었나. OECD 최고의 자영업 비중 때문이다. 우리의 자영업 비중은 OECD에서 두 번째로 높고 적정 규모의 3.5배에 달한다. 자영업자 세 명 중 두 명은 어차피 시장에서 버텨낼 재간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시장에서의 불리한 지위를 본인과 가족의 무지막지한 장시간 무급 노동으로 때우며 버텨왔다. 이런 상황이 현 정부 들어서 빚어진 것인가.

박근혜 정부 때도, 이명박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나간 어느 정부도 구조조정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자영업이 적정 규모로 구조조정되는 순간 실업률은 치솟을 것이고, 그것은 정치적 타격으로 돌아올 것이 뻔하므로. 정치적 이유로 한계에 선 자영업자들을 방치해온 것이다. 이번에 최저임금이 이슈가 되자 다수의 언론은 그렇지 않아도 알바 정도의 수입이나 간신히 올리던 편의점주들이 이제는 알바만도 못하게 되었다는 논지로 비판에 나섰다. 무책임한 비판이다. 편의점주가 알바 정도 수입이나 간신히 올려왔다면 그것 자체가 비정상 아닌가. 지금까지 이 비정상에 대해 침묵하다가 알바보다 못하게 되었다고 비판한다면 진의를 의심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영업 문제에 정공법으로 접근해야 한다.

셋째, 정책 결정이 이루어지는 방식, 즉 거버넌스를 총체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 최근에는 정부부서와 일을 하다보면 그들이 보유한 높은 능력과 지식 수준에 놀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정책 자문을 해달라고 요청을 받지만 이미 실무자들이 전문가를 능가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거의 항상 ‘정무적 판단’의 영역이 빈칸으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국정을 운영하다보면 불가피하게 정무적 판단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무적 판단의 영역이 많아질수록 정책의 합리성은 그만큼 증발한다. 정무적 판단에 참여하는 사람은 소수일 수밖에 없고, 그들은 해당 정책에 대해 실무자 수준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을 분리해서 다루는 기존의 관행도 재고해야 한다. 재정에 대한 세밀한 고려 없이 사회정책이 제시되고, 기재부가 재정을 이유로 사회정책을 난도질하고, 그로 인한 소모적 논쟁이 정책의 동력을 잃게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정부 내에서 부문별 사회정책의 필요성과 재정에 대한 토론이 충분히 이루어지고 합의된 상태에서 정책을 발표하고 추진해야 한다.

우리처럼 정치적·사회적 합의의 메커니즘이 전무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할 것인가가 결과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모처럼 5일간의 휴가를 시작한 문재인 대통령이 현명한 결론을 가지고 업무에 복귀하길 기대한다.

<장덕진 |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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