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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자, 유시민은 어용지식인을 자처했다. 어용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자나 권력 기관에 영합해 줏대 없이 행동하는 것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유시민은 모욕적 뜻 앞에 ‘진보’를 붙여 진보어용지식인이라는 괴이한 낱말을 탄생시켰다. 이유는 있다. 참여정부 때 청와대만 가졌더니, 재벌, 언론, 검찰, 관료, 야당 등 기존 보수 세력의 반발과 견제에 진보가 무너졌다는 거다. 5년짜리 손님이 한국 사회를 어떻게 바꾸겠나. 그는 개혁에 반발하는 적폐로부터 약한 대통령을 지킬 칼이 되고자 한 것이다.

이를 날카롭게 비판해야 할 지식인의 모습은 어떤가? 역사학자 전우용은 박원순을 가리켜 “그만 한 남자사람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라 했고, 김동춘은 “100조원을 줘도 박원순을 되살릴 수 없다”고 했고, 조희연은 “고매하게 지켜온 삶의 무게에 짓눌려…”라며 안타까워했다. 인플루언서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고 박원순 시장이 비서에게 한 성희롱을 자신도 했다며 이게 뭐가 문제냐는 식의 글을 올린다. 비슷한 행동을 했다면 돌아보고 반성해야 할 오피니언 리더들이 되레 가해 사실을 당당히 밝힌다. 고인에 대한 의리와 예의를 지키자고 하지만, 나는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시절 권력자들을 향한 지식인들의 예의와 도를 넘은 비판들을 지켜봤다. 이명박·박근혜와 싸울 당시 우리는 이를 표현의 자유라 불렀고 약자들의 권리도 함께 옹호했다. 그나마 민주당의 유력 정치인들은 지지율이 떨어지자 재빨리 사과했다. 지식인의 가치와 소신이 정치인의 동물적 감각보다 못하다.이젠 ‘진보’라는 말을 떼도 될 것 같다. 더불어민주당은 청와대는 물론 국회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위성정당을 만들었으며, 마음에 들지 않는 언론은 ‘기레기’라 욕하는 열성지지층은 물론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만난 시민단체 친구들도 있다. 이 막강한 권력을 논리적, 윤리적으로 지키기 위해 지식인이 나선다면 ‘어용지식인’만큼 적절한 표현도 없다. 민주당은 스스로를 개혁세력이라 하지만, 하나하나 따져보면 그렇지도 않다. 청와대의 고위공직자와 국회의원들은 수십억원의 강남아파트를 가진 채 땅값을 잡겠다 하고, 삼성엔 면죄부를 주고, 약속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자신들이 정한 당헌을 어기면서까지 부산과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공천을 하려 한다. 그들이 명분으로 삼는 미래통합당은 막말만 늘어놓고 있어 국민들의 지지도 받지 못한다. 오죽하면 야당복이 있다 하겠나. 개혁을 가로막는 건 오히려 기득권이 되어버린 여당 내부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특히 안희정·오거돈·박원순으로 이어지는 권력형 성폭력은 민주당의 반성과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아무리 위대해 보이는 인물도, 개인으로 보면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 우리가 무오류의 인간을 상정하고 그를 신격화한다면, 그건 팬클럽이지 주권자의 참여행위도 민주주의도 아니다. 안희정 사건은 불륜으로, 오거돈 사건은 공작으로 규정하면서 얻고 싶은 게 있다면, 자신들이 지키고 싶은 정치인에게 오점을 남기지 않는 것, 정치적 피해자로 만들어 복권을 노리는 일일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이렇게 권력자의 잘못을 끊임없이 덮다보면, 탄생하는 게 바로 제왕적 권력이다. 그런데 시시하고 불완전한 인간들이 모여 서로 싸우고 논쟁하는 게 민주주의다. 누군가 잘못을 하면 책임지고 사과하고 물러나고, 다른 이가 대표가 되면 된다. 하는 일 없어 보이는 대표가 가장 잘해야 하는 일도 욕먹는 일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민주주의를 지키고 권력자를 향해 비판의 칼을 날려야 할 지식인이 죽어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낡고 뒤처진 지식인의 무덤 위에 등장한 새로운 국민의 존재다. 자칭 진보어용지식인들에게 마지막 부탁을 드리고 싶다. 가끔씩은 거울을 보길 바란다. 자신 옆에 박정희와 태극기부대가 있을지도 모른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7230300005&code=990100#csidx816c5420497a135ac44c2c4373b04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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