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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이 간다. 비 맞아 드러눕는 꽃잎들 뒤로 또 하루가 간다. 청노새 딸랑대며 지나가는 역마차 길. 헛된 맹세에 눈물짓던 연분홍 치마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별은 운명처럼 찾아왔다. 임에게 주려 품고간 편지는 차마 건네지 못하고 흐르는 강물에 띄워 보냈다. 그리고 만개한 꽃잎들이 그 위로 부서져 내렸다.

편지는 전령사다. 손편지를 쓰는 일은 일종의 의식과 같다. 마음을 잡고 꽃향기 나는 편지지 책상에 곱게 펼친 뒤 만년필을 꺼낸다. 편지는 잉크펜으로 써야 제 맛이다. 종이의 질은 향기만큼 좋지 않다. 펜촉 사이에 지편이라도 끼면 글자는 번지고 미친놈처럼 춤추기 일쑤다.

고심 끝에 완성된 편지는 대로변 소방차 색깔의 우체통으로 가져간다. 또 한번 고민의 시간이다. 저 놈이 날름 먹은 뒤에는 다시 꺼낼 수도 고칠 수도 없다. 몇 번을 고쳐 쓰고 봉인했지만 ‘혹시나’하며 스스로를 의심한다. 깔딱거리는 그 놈의 입으로 편지를 투척한 뒤엔 기다림의 시간이다. 조바심과 두근거림으로 몇날 며칠이 지나 기진할 때쯤 답신이 도착한다.

이젠 게으름으로 인해, 새로운 전달수단의 발달로 인해 손편지에서 멀어졌다. 디지털시대에 편지 쓰기는 고단한 일이 아니다. 펜, 잉크, 편지, 우표 어떤 것도 필요치 않다. 자판만 툭탁거리고 ‘센드’만 클릭하면 된다. ‘까똑 까똑’하며 편지 도착까지 알려준다. 편리함을 얻었을지는 모르지만 낭만을 잃었다.

편지는 상대방에 도달을 전제로 한다. 사랑, 그리움, 부탁, 약속, 변명, 한풀이 등 다양한 이유로 편지를 띄웠다.

역사서 <사기>를 지은 사마천은 사형이 확정된 친구에게 편지를 써 궁형을 당하면서까지 구차하게 살아남은 이유를 말했다. “보잘것없는 재주를 빌려 평소 생각해 둔 일을 서투른 문장에 의탁해 세상에 전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수치심을 생각하면 식은땀이 흘러 아랫도리가 축축해진다”며 인간적인 고뇌를 털어놓았다. 로마황제 카이사르는 로마를 정복하면서 심복 마티우스에게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는 촌철살인의 전갈을 띄웠다.

사랑의 편지도 있다. 노벨상을 부인과 함께 받은 피에르 퀴리는 결혼 전 마리 퀴리에게 “당신의 소식을 듣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큰 즐거움”이라면서 “사실 믿어지지는 않지만, 서로 가까이에서 함께 꿈을 꾸며 살면 얼마나 기쁠까?”라고 구애의 편지를 썼다.

20세기 초 남극점 탐험에 나섰던 영국인 로버트 팰컨 스콧은 극지에서 죽음을 직감한 뒤 유언을 친구 J M 베리에게 편지로 남겼다. 자신이 죽은 뒤에라도 전달되기를 기원하면서. “죽는 것은 조금도 두렵지 않다. 다만 힘들고 어려운 여행을 하는 동안 내내, 영국으로 돌아가면 하겠다고 마음먹은 수많은 기쁨들을 단념해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프다. 식료품도 연료도 전혀 없다. 친구여, 마지막 소원으로 아내와 아이들을 부탁한다. 만약 국가에서 해 주지 않을 때는 자네가 아들에게 인생의 기회를 주게.”

세월호 침몰 1년을 맞는다. 변한 건 없다. 진상 규명도, 인양도 제자리걸음이다. 정부는 책임을 회피하고 돈으로 덮으려고 한다.

안산 단원고 생존학생들과 편지를 주고 받고 있는 덕성여고 학생들 /김정근기자 서울 덕성여고 3학년 오세진양이 지난 7일 학교에서 단원고 친구에게 보낼 편지를 쓰고 있다. (출처 : 경향DB)


지난주말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너에게 보내는 편지’를 주제로 추모행사를 열었다. 하늘의 별이 됐거나 사라진 아들, 딸, 형, 동생에게 소식을 전했다. 아이를 보낸 엄마는 수없이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물방울 같은 이름 하나를 불렀다. “깊은 땅에 묻고 돌아선 날의 막막한 벌판 끝에 열리는 밤/ 내가 일천 번도 더 입을 맞춘 별이 있음을/ 이 지상의 사람은 모르리라.”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이가림)

떠난 오빠에게 “다음 생에도 나의 오빠로 태어나 달라”며 “그땐 지금처럼 후회하지 않게 더, 더욱더 잘해줄게”라고 약속하고 “언니 없는 밤이 너무 외롭다. 언니에게 카톡을 보냈는데 답장이 없다”며 그리움을 전하기도 했다. “호연아. 잘 지내고 있지? 널 너무 보고 싶은데, 볼 수 없어 너무 힘드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언제나 내 동생이어서 고마웠고, 자랑스러웠어. 사랑한다”는 형의 편지도 있었다.

너무 큰 슬픔이 닥친 순간에는 울음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다 시간이 흐른 뒤 불현듯 슬픔은 뒤통수를 친다. 밥을 먹다가도, 세수를 하다가도,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그 눈물을 찍어내 써내려간 편지다.

희생자가 304명인 만큼 304개의 사연이 있다. 하지만 이들의 편지는 부쳐도 받을 사람이 없다. 이 혼절도 없는 봄날은 왜 헛소리 같은 이름을 자꾸 흘리게 하는지.


박종성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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