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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현 정권 다섯 해는 제가 한 신문사의 논설위원으로 일하던 때와 거의 포개집니다. 그 시절은 당신의 정치역정 중 가장 화사한 시기였습니다. 당신은 여당 대표를 지냈고, 대통령 다음의 2인자로서 대한민국의 외교 안보 통일 정책을 관장했으며, 마침내 여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섰습니다. 그 전시기를 통해, 제가 그 신문이나 다른 지면에서 당신을 언급한 글 가운데 당신에게 호감을 표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당신이 소위 친노의 둥지 안에 있었을 때도, 당신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결별하고 대선 출정에 나선 뒤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 다수가 당신에게서 이탈한 것이 틀림없는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나는 당신 대신에 민주노동당 후보에게 투표했습니다.

제가 민주노동당 후보에게 투표한 것은 그 당의 이념에 공감해서는 아니었습니다. 정권재창출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거의 확실해진 바에야, 소수정당에 제 한 표를 던지고 싶었습니다. 그 선택 때문에 제가 비판받을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소박한 자유주의자로서 제가 당신에게 투표하는 것이 자연스럽기는 했지만, 노 정권 5년 동안 당신은 저를 너무 실망시켰기 때문입니다. 만일 제가 비판을 받아야 한다면, 그 선거에서 당신에게 투표하지 않은 친노 유권자들은 훨씬 더 큰 비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통합민주신당이 열린우리당을 계승한 정당임은 명확했으므로, 노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마땅히 당신을 지지했어야 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 정권 5년 동안, 당신을 비판한 것만큼 비판하지는 않았지만, 저는 대통령도 적잖이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극보수언론이 어이없는 이유로 청와대를 힐난할 때는, 과감히 나서서 대통령을 옹호했습니다. 실제로 제 글을 청와대 홈페이지에 옮겨 실어도 되겠느냐는 물음이 청와대로부터 와서 그러라고 말한 적이 두 번 있습니다. 국정의 최고책임자를 번갈아 비판하고 방어하면서도, 당신을 한번도 옹호한 적이 없다는 것은 얄궂습니다. 더구나 당신의 잘못을 추궁하는 제 언어는 때로 너무나 벼려져 있어서, 제 협량을 드러내는 듯도 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을 무시로 방어한 제가 당신에게는 왜 그리 모질었을까요? 그 이유는 여럿이겠지만, 제 잠재의식에 당신이 제 동향인이라는 사실이 깔려 있어서 그랬을 것입니다.

한때는 어떤 신문에서도 쓰지 못하던 ‘영남패권주의(영패)’라는 말이 이제 언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 말이 태어난 것은 꽤 오래전이지만, ‘영패’는 좌우 보혁을 가로지르는 대한민국 주류사회에서 금기어였습니다. 그것이 너무나 불편한 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제도권 언론에서 이 말을 거침없이 사용한 사람은 저 말고 거의 없을 것입니다. 최근 이 말이 제도권 언론에 나풀거리게 된 것은 서남대 김욱 교수가 쓴 <아주 낯선 상식>이라는 책 덕분입니다. 이 책은 대한민국 사회에 미만한 영패를 분석하고 그것의 해소를 모색한 책입니다. 당초 이 책은 제도권 언론 카르텔의 의도적 무시 때문에 ‘금서 아닌 금서’가 될 뻔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사람들 입에 회자되는 책이 됐습니다.



제 판단에, 노무현 정권은 새누리당 정권과 영남패권주의를 공유했습니다. 제가 노 정권을 비판한 것은 삼성그룹에 기대는 그 정권의 계급적 성격이나 어설픈 외교 안보 정책 때문이기도 했지만, 핵심권력자들이 영남패권주의를 무람없이 추구하고 행사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존경받아 마땅할 점이 노 전 대통령에게는 많았습니다. 반면에 저는 그이가, 비록 노골적이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영패주의자였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노 전 대통령 처지에서 판단하자면, 고향에서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과 다름없는 것이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그 욕망을 이루기 위해, 그를 몰표로 지지한 호남 유권자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습니다. 그러고도 결국 그는 고향에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노 전 대통령의 욕망을 이해할 만한 것이라 판단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달랐습니다. 당신은 고향에서 인정받았습니다. 그러고도 고향을 배신했습니다. 당신과 저의 동향인들은 2002년 대선 국면에서 당신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똑같이 지지했습니다. 그리고 당신과 노 전 대통령에게 똑같이 배신당했습니다. 똑같이 호남을 배신했지만, 제가 노 전 대통령보다 당신을 더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은 당신이 호남인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노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당 분당에 앞장섰습니다. 그 과정에서 ‘난닝구’라는 말이 태어났습니다. 이 ‘난닝구’라는 말은 당초 열린우리당에 따라가지 않고 민주당에 남은 정치인들이나 그 지지자들을 가리켰지만, 이내 호남 사람 전체를 경멸적으로 가리키는 비하어로 뜻이 확장되었습니다. 이것은 한국 정치의 참사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문단의 한 선배는, 이 ‘난닝구’라는 말의 탄생이 결국 노 전 대통령을 자살로까지 몰고 갔다고 말합니다. 그 판단이 옳든 그르든, 지금 야권의 온갖 분열과 무기력의 뿌리가 당신이 주도한 민주당 분당이었다는 것은 당신도 인정할 것입니다. 열린우리당에 따라가지 않은 민주당 사람들을 ‘잔민당’이라는 말로 경멸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 오늘날 ‘민주당’이라는 이름에 그토록 애착을 보이는 것은 일종의 소극입니다.

당신은 마땅히 영남패권주의라 불러야 할 것을 지역주의 내지는 지역감정이라 부르며, 그것을 없애는 방법은 그것을 언급하지 않는 것이라는 기묘한 처방을 내놓았습니다. 노 정권 초 당신이 ‘대구사랑모임’이라는 것을 만들었을 때, 저는 기함했습니다. 1961년 박정희 장군의 군사반란 이후 대구는 애정결핍 상태였던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호남정권 아래서도 대구는 충분히 사랑받았습니다.

당신이 처음으로 영남패권주의라는 말을 쓴 것은 열린우리당을 중심으로 민주당 계열 정당을 통합하자는 당신의 요청을 노 전 대통령이 거부한 이후입니다. 당신은 대선 국면에서 노 전 대통령과 갈라지고 나서야 영패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했고, 노 전 대통령이 영패주의자라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없다고 아무리 우겨도 있는 것이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당신은 너무 늦게 영패의 울타리를 넘었습니다. 사실은 영패 서클에서 쫓겨났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지요. 그러니 제가 어떻게 당신에게 살가운 말을 건넬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오늘의 이 편지는 당신에 대한 질책을 되풀이하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당신을 향해 겨눈 펜촉들이 너무 날카로웠음을 인정하고, 당신의 정치 일선 복귀를 권유하기 위해 쓰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제가 던진 말의 돌멩이들이 비례의 원칙을 깨고 너무 많았던 것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지금의 정치권은, 특히 위기에 놓인 야권은 당신의 경륜을 필요로 합니다. 그 경륜은 당신이 맡아온 고위 직책들로부터만이 아니라, 정치권에서 때론 스스로 저지르고 때론 가슴 아리게 당한 배신의 염량세태에서도 축적되었을 것입니다. 영패에 협력했다가 영패에 핍박받은 경험을 바탕으로, 영패를 넘어서는 ‘새로운’ 정치에 당신의 역량을 보태십시오. 저는 당신에게 대통령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지만, 대통령이 되지 않고서도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은 많습니다. 고향에 틀어박혀서 고구마나 만지작거릴 때가 아닙니다. 나오십시오. 당신이 있어야 할 곳은 정치권입니다. 한때 당신이 상처를 줬던 고향을 위해서, 그리고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재건을 위해서 나오십시오.


고종석 |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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