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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 동안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청문회 회의록을 국회 홈페이지에서 내려 받아 읽어봤다. 유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에 대한 야당의 추궁은 공직 후보자의 자질과 자격을 철저하게 검증하기 위해 불가피했다. 그러나 교육 현안에 대한 식견의 폭과 깊이를 따짐으로써 후보자의 경륜과 역량을 저울질하는 작업은 미흡했다. 현 정부 첫 교육부 장관이 대학입시를 둘러싼 논란 등으로 좌절한 틈을 활용한 정치 공세가 두드러진 형국이었다.

한 사람의 교육부 장관이 난마처럼 뒤엉킨 교육 문제를 모두 풀어갈 수는 없다. 국회 역시 장관 못지않게 책임 있는 자세로 제 역할을 해야 옳다. 물론 국회의원들이 청문회장에서 내놓은 정책 제안 중에는 차기 장관이 구체화해야 할 좋은 것들이 많다. 그러나 초·중등교육부터 고등교육까지 다양한 과제를 하나로 꿰는 긴 호흡의 일관된 개혁에 맞는 큰 그림을 정부와 국회, 그리고 국회의 여야가 함께 만드는 일에는 크게 못 미쳤다. 대학입시 개편을 놓고도 정책의 혼선을 꾸짖는 목소리는 높았지만, 개혁의 장기적 방향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노력은 뒷전이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19일 국회 교육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야당 위원의 의사진행 발언 도중 머리를 쓸어넘기고 있다. 권호욱 기자

교육부 개혁이라는 절실한 과제에 대해 여당의 박용진 의원은 교육부가 국민권익위원회의 종합청렴도 조사에서 2015년, 2016년에 연속 꼴찌, 2017년은 밑에서 5위, 국가공무원 부처별 범죄도 2015년 5위, 2016년 2위, 2017년 3위임을 지적했다. 박 의원은 시·도 교육청부터 개별 대학과 초·중·고교까지 광범위하고 막강한 감사 권한을 가진 교육부를 뜯어고치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나 금융감독원처럼 외부 전문가를 감사 인력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을 제안했다.

하지만 유은혜 후보자의 답변은 청문회라는 어려운 자리임을 감안해도 밋밋한 원칙적 입장 표명에 그쳤다. 이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교육부의 감사 역량은 전문성도 부족하고 비리를 막기 힘들어 변호사, 회계사 등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상시 감사체제를 갖추자고 주장해왔다. ‘촛불정부’의 사회부총리 후보자라면 이러한 감사체제를 확약하는 정도의 소신은 있어야 했다.

외부 전문가의 상시 감사제 도입으로 사학비리 척결이 본격화되지 않으면, 예를 들어 고등교육 주요 대선공약인 공영형 사립대는 성공하기 어렵다. 학령인구가 급감하는 터에 비리와 부실로 멍든 학교에 국민 세금을 쓰기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공영형 사립대의 시범 사업 예산 약 800억원은 전액 삭감되고 말았다. 한국 대학의 80%에 가까운 사학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핵심 공약이 첫걸음도 떼기 전에 좌초 위기인 것이다. 그러나 이 예산이 국회 심의 과정에서 살아날 가능성은 남아 있다. 이를 염려한 탓인지 야당인 자유한국당 이군현 의원은 공영형 사립대라는 발상이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에 어긋나며, 정권이 공익 이사를 통해 사학 운영에 간섭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엿보인다는 판에 박힌 공격을 되풀이했다. 사학에 만연한 비리와 부패에 애써 눈을 감는 수구정당의 면모는 한 치도 변하지 않고 있다.

공영형 사립대 시범 사업의 선정 기준은 첫째,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수도권 아닌 지방대학, 둘째, 대학 민주화를 위해 싸운 역사와 성과, 셋째, 이사회·평의원회·교수회 등의 정상화라는 세 가지가 되어야 옳다. 특히 학교를 살리기 위해서 교수진이 단결하여 자신의 급여를 깎는 희생까지 있었다면 자격이 충분하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내년에 몇몇 대학이 공영형 사립대로서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 자연스럽게 다른 사학에서도 대학 민주화의 물결이 더욱 거세질 것이다. 교육부 감사 제도의 혁신은 이러한 시대적 대세에 부응하는 마중물이 된다. 공영형 사립대 사업이 순항하며 확대되면 대학 구조조정도 원만하게 진행될 길이 열린다.

유은혜 후보자는 교육현장 경험이 없고, 교육개혁의 깊이 있는 청사진을 감당할 의정활동이 부족했다는 비판도 청문회에서 나왔다. 그러나 유망한 정치인이라면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는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다음 총선 출마 시한까지만 자리를 지킬 장관이라는 비아냥도 나왔지만, 현안의 경중을 가려서 원칙 있게 대처를 한다면 1년여 기간도 짧지 않다. 물론 관료들의 무능과 훼방을 뚫고 현장의 여론에 다가가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소신있는 자세로 턱없이 부족한 고등교육 예산 증액을 공언하며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낸다면, 누가 장관을 이어받더라도 퇴행하지 않을 개혁의 토대를 세울 수 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에서 분리되어 새로 생긴 교육위가 제 역할을 해야 이런 성공이 가능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김명환 서울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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