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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농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30일 양 전 대법원장의 차량과 고영한 전 대법관의 자택, 박병대·차한성 전 대법관의 현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이 지난 6월 수사에 착수한 이후 ‘양승태 대법원 최고위층’에 대한 강제수사에 돌입한 것은 처음이다. 전직 대법원장이 범죄 혐의에 연루돼 압수수색을 당한 것도 헌정 사상 최초다. 양 전 대법원장 자택에 대한 영장이 기각되기는 했으나, 전직 대법관들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이 일부 발부된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윗선’ 수사를 끈질기게 차단해온 법원이 한발 물러선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법원의 방어벽에 균열이 시작된 신호로 받아들인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 10월 1일 (출처:경향신문DB)

압수수색을 당한 3인의 전직 대법관은 재판거래·법관사찰 의혹의 핵심에 있는 인사들이다. 차한성·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은 양 전 대법원장 재직 중인 2011년 10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대법관이 겸임하는 법원행정처장을 연이어 맡았다. 차·박 전 대법관은 박근혜 정권 시절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과 만나, 일제 강제징용 민사소송에 대해 논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고 전 대법관은 전국교직원노조 법외노조 소송과 부산지역 법조비리 재판에 개입한 의혹 등을 사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들을 지휘하는 사법행정의 최종 결정권자로서, 사법농단 사태의 ‘몸통’이자 ‘정점’이다.

물론 압수수색영장이 일부 발부됐다 해도 한계가 있음은 분명하다. 검찰 수사가 시작된 뒤 상당한 시간이 흐른 만큼 주요 증거들이 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대법관을 지낸 법률가들이 고의로 증거를 인멸한 행위가 확인된다면, 그 사실 자체가 범죄 혐의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증거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본다. 검찰은 이번 모멘텀을 놓치지 말고 조기에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한다.

법원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각성할 때다. 100일 넘는 검찰 수사를 통해 다수의 물증과 진술이 축적돼 있는 터다. 엄연한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타조가 모래밭에 머리 파묻듯 외면해서야 되겠는가. ‘증거자료가 있을 개연성이 낮으니, 자택은 압수수색하지 말라’는 유의 언설로 법원을 방어하려는 시도는 이제 포기해야 옳다. 주권자는 더 이상 속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 법원은 치외법권지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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