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정부가 종교인 과세 범위를 담은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 내용을 확정해 27일 발표했다. 개정안은 30일 입법 예고돼 내년부터 시행한다. 1968년 종교인 과세 문제가 거론된 이후 50년 만에 시행된다는 사실은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실망스럽다. 무엇보다 종교인이 소속단체로부터 받은 소득에만 세금을 매기고, 종교활동에 사용할 목적으로 받은 종교활동비는 과세대상에서 제외한 것이다. 게다가 종교활동비의 결정권도 종교단체가 갖는다. 종교단체가 종교활동비로 결정만 하면 소속 종교인에게 지급하는 모든 돈은 세금 한 푼 내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과 개신교 대표들이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CCMM빌딩에서 열린 종교인 과세 간담회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종교인들에 대한 간이세액도 근로소득자에 비해 낮다. 4인 가구 기준 연소득 5000만원 종교인에 대한 원천징수액은 월 5만730원으로 같은 소득의 근로소득자 9만9560원의 절반 수준이다. 종교단체 회계와 종교인 회계를 달리 작성할 수 있게 하고, 종교단체 회계는 세무조사 대상에서 뺀 것도 이해할 수 없다. 교회는 공익법인이고, 국세청은 공익법인 등이 출연받은 재산을 공익 목적으로 썼는지 언제든지 조사할 수 있다는 규정을 부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종교단체도 있을 것이다. 백번 양보해 시행에 의미를 뒀다 하더라도 과세 형평성 차원에서 지나친 특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개정안은 ‘추가 유예’를 주장해온 보수 개신교 측과 ‘예정대로’를 말해온 정부의 타협안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정부가 보수 개신교계의 주장을 전면 수용한 것이나 다름없다. 보수 개신교계는 그동안 “과세 강행 시 심각한 조세저항과 정교갈등을 낳을 것”이라며 정부에 으름장을 놨다. 문재인 정부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을 지낸 김진표 의원 등은 이에 맞장구를 쳤다. 여기에 기획재정부도 “(교계에서) 새 의견이 제시되면 성심을 다해 보완방안을 마련하겠다”며 쩔쩔매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이번 개정안은 정부가 특정 종교단체에 끌려다니다 무릎을 꿇은 결과물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무엇보다 공정, 형평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온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에 나쁜 선례를 남기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원칙은 종교인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더구나 세금은 형평성이 최우선 가치이다. 정부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과세안 대신 시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보완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