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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로 여행을 떠난 친구가 ‘단톡방’(단체대화방)에 올린 사진을 보니 아름답게 핀 동백나무 아래서 활짝 웃고 있었다. “벌써 동백꽃이 피는 계절이 되었구나!” 가을 자락을 잡고, 조금이라도 늦추어 보려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겨울은 뚜벅뚜벅 걸어서 어느새 곁에 와 있다. 막상 “겨울이구나”하고 마음먹으니 새삼 다시 보이는 것도, 기다려지는 일도 많다. 금세 녹아버리긴 했지만 밤새 간간이 내린 눈이 그대로 눈꽃이 되어 나무마다 달리는 장관을 보기도 하고, 새삼 메타세쿼이아의 마지막 갈빛 단풍빛에서 기품을 느끼기도 한다. 다음달 초 수목원에서 작은 음악회(The Snow)가 열리는데, 이때 진짜 눈이 내리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도 생긴다. 무엇보다도 겨울꽃 동백나무의 그 붉은 아름다움을 다시 만날 생각은 분명 설렘이다.
한창 나무공부를 시작하던 시절, 동백나무는 겨울나무일까 봄의 나무일까 고민해 본 기억이 있다. 동백(冬柏)은 말 그대로 겨울나무이지만, 사실 고창 선운사를 비롯하여 뭍에서 만난 동백들은 대부분 이르긴 해도 분명 봄에 피는 꽃이었기 때문이다. 거문도에 가서 처음 동백나무가 겨울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넘실대는 푸른 바다를 건너, 섬에서 만난 동백꽃은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진초록빛 잎새 사이에 선연하고도 붉은 동백꽃잎들을 과하지 않게 벌려 그렇게 단아하게 피고 있었다. 가슴 저 깊은 곳을 살짝 건드려 눈물이 찔끔 날 만큼 아름다웠던 기억이다. 내륙으로는 고창 선운사, 바닷가로는 좀 더 북쪽인 마량리, 섬으로는 대청도까지 올라오지만 따뜻한 곳에 자라는 남쪽의 꽃나무인 것이다.
특이한 것은 당연히 한자이름이라고 생각한 동백이란 이름은 우리나라에만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한자로 표현된 옛 문헌의 나무이름을, 현대 식물도감에서 정리된 식물이름과 비교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과 오류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산다(山茶) 또는 산다화라는 이름으로 많이 기록되어 있다. 중국 이태백(李太白) 시집에는 “해홍화(海紅花)는 신라에서 들어왔는데 귀하다”고 기록되어 있고, 일본에서는 춘(椿)자로 표현하기도 한다. 재미난 것은 이 한자를 우리나라 옥편에서는 가죽나무 춘, 중국에서는 소태나뭇과에 속하는 별개의 식물을 지칭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생겨난 웃지 못할 일이 있다. 뒤마의 소설을 소재로 한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처음 우리나라에서 소개되고 공연될 때는 춘희라고 소개되었다. 일본에서는 주인공 비올레타가 사교계에 나갈 때, 항상 동백꽃을 꽂고 나타났기 때문에 동백나무아가씨란 뜻의 춘희(椿姬)란 제목이 붙은 것인데, 우리나라에서 이를 쓰면 가죽나무(?)아가씨가 되는 셈이다.
산다(山茶)라는 이름은 이 꽃나무가 차나무와 관계가 있음을 나타낸다. 실제로 차나무와 같은 집안의 식물이다. 새잎을 차로 만들어 마시는 차나무와 꽃을 주로 보는 동백나무를 연관시키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꽃잎 색은 다르지만 그 속에 진한 노란 수술이 가득 들어 있는 꽃의 모양새를 보면, 금세 한집안 식구임을 안다. 차나무 꽃도 매우 고우며 바로 이즈음 피어난다. 혹 남도여행을 떠나 다원에 들리게 되면 꼭 꽃들을 찾아보길 권한다. 동백꽃보다 좀 작지만 순결한 꽃들이 참 곱다. 그 옆에는 지난해 피었던 꽃에 익은 열매가 동글동글 함께 달려 차나무에는 실화상봉수(實花相逢樹), 즉 꽃과 열매가 함께 달린 나무라는 뜻의 별칭이 있다. 이 외에도 동백나무에는 봄에 핀다하여 춘백(春柏), 붉게 달린 꽃을 따서 학단(鶴丹), 겨울을 견디는 꽃이라는 내동화(耐冬花) 등의 여러 이름이 있다.
동백나무가 아닌데 동백으로 불리는 나무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생강나무이다. 생강나무는 중부지방에서는 산동백, 올동백 등으로 불린다. 그 이유는 열매에서 기름을 짰다는 공통점 때문이다. 동백기름이 예전에는 매우 향기롭고 유용하였는데, 동백나무가 겨울 추위를 견디지 못하는 곳에서는 생강나무 씨앗에서 기름을 짰기 때문이다. 정선아리랑에 나오는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지네” 할 때의 동백은 생강나무를 말한다. 짐작하건대,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 나오는 노란동백꽃도 생강나무일 확률이 높다. 수백 가지의 동백나무 품종이 나와 있지만 아직 노란색은 없으며 그분의 고향이 강원도인 것을 보면 그렇다. 1938년 발행된 동백꽃의 표지에는 붉은 동백이 그려져 있긴 하다.
조선시대 키웠던 꽃들에 대한 책인 강희안의 <양화소록>(養花小錄)에도 동백나무가 등장하는데, 산다를 동백이라 하고, 자미화를 백일홍이라 한다며, “같음과 다름을 분간하지 못하고 진짜와 가짜를 서로 혼동한다. 어찌 꽃의 이름만 그러한가! 세상사가 모두 이와 같다”라고 쓰여 있다. 하지만 지금의 표준이름은 동백나무이다. 시대에 따라, 시선에 따라 이름은 다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얕은 지식이나 선입견에 갇혀 고집스럽게 나이 들고 싶지 않은 것이 나의 간절한 바람이다. 마지막 남은 올해의 한 달은, 그런 섣부른 판단으로 틀어진 일들을 찾아내어 바로잡는 데 써야겠다.
<이유미 | 국립수목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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