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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15일에 발생한 목선 귀순 이후 발생한 문제로 군심이 흔들리고 있다. 평생 군생활을 했으나 이번처럼 망측한 사건 처리와 이후 조치를 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경계작전의 잘못보다 군수뇌부의 무책임한 태도와 책임전가가 더 심각했다.

북한 목선이 속초항에 들어온 것은 6월15일 새벽이었다. 그날 아침 보고를 받은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은 CCTV를 보면서 군의 경계태세에 문제가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고 한다. 합참은 전비태세검열단을 보내 문제를 파악했다. 경계작전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졌으나 기존의 장비로 목선을 식별하는 것이 곤란하며, 해경과 제1함대사, 육군 23사단 그리고 8군단과 직접 상황을 공유하는 체계가 미흡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정상적이라면 목선과 같은 작은 물체를 식별할 수 있도록 레이다 성능을 높이거나 레이다를 보고 해석하는 병사들의 능력을 향상시키고 지역 작전부대 간 서로 상황을 주고받을 수 있는 체계를 보완하면 된다. 문제를 분명하게 식별했기 때문에 사후조치만 잘하면, 다음에 유사한 일이 발생하더라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었다.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간 것은 17일 국방부 언론 브리핑이었다. 사건 당일인 15일 상황판단과 달리 17일 브리핑에서 국방부는 군의 경계작전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누가 보아도 문제가 있는데 이상이 없다고 하니 여론이 좋을 리 없었다. 결국 18일, 하루 만에 대통령이 군의 경계작전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언급을 했다. 그러자 19일, 국방부 장관은 군의 잘못이 없다던 말을 뒤집고, 군의 작전실패를 인정하면서 동해안 작전을 책임지고 있는 제8군단장을 보직 해임시키고 제23사단장과 해군 제1함대 사령관을 징계에 회부했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경계작전 실패가 아니라, 군 수뇌부가 자신들의 판단을 분명한 이유 없이 바꾸면서 신뢰를 상실했고 정무적 판단 잘못을 전방지휘관의 작전실패로 전가한 것이다. 경계작전 수행 간 문제는 분명히 있었고 현장에서 보완하고 고치면 되는 것이었다. 정말로 심각한 문제는 먼저 군수뇌부가 경계작전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 잘못되지 않았다고 사실을 덮으려 했으며, 전방 작전 지휘관에게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무능력과 무소신에 대한 비난을 모면하려 한 것이다.  

상당수 장교들은, 군수뇌부가 17일에 경계작전에 문제가 없다고 허위발표한 것은 청와대 최고 안보책임자와 교감한 결과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난봄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군은 최초부터 ‘탄도미사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청와대 안보실과 상황평가회의에서 그 판단이 바뀌었다고 한다. 청와대 안보최고책임자가 당시의 안보상황을 고려하여 ‘탄도’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번 17일 국방부의 입장이 갑자기 변한 것을 보면서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추론의 과정이 아닐 수 없다. 6월 말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이 예정되어 있었고, 남·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북한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했을 수도 있다. 아무리 의미 있는 정책을 추진하더라도 사실을 왜곡하면 부작용이 더 커진다. 이번 17일 군수뇌부 판단번복에 청와대 안보실 책임자가 개입했다면, 이는 두번이나 동일한 잘못을 한 것이다. 한번은 경험 부족이지만, 두번은 실력 부족이다.   

설사 청와대 안보실의 정무적 이유로 판단을 번복했다하더라도 그 최종책임은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의 몫이다. 청와대의 요구라서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청와대 안보실의 요구를 수용하는 순간, 모든 것은 군수뇌부의 책임이다. 군수뇌부가 청와대 안보실 뒤에 숨으려 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군수뇌부는 자신들의 정무적 판단 잘못을 작전의 실패로 전가하면서 책임을 회피했다. 과거 군수뇌부들 중 무능력하다고 비난을 받은 경우는 있었으나, 지금처럼 책임전가하는 경우를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군문에 들어설 때 ‘공은 부하에게 책임은 내가’라는 말을 들었다. 이는 생사가 오가는 전장에서 지휘관이 부하에게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예의다. 군수뇌부는 군의 정신적 가치를 스스로 훼손했다. 자신을 지켜주기는커녕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군인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아무리 정당한 상관의 지시라고 할지라도 목숨 걸고 이행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전방의 지휘관들도 부하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 이는 군지휘체계의 최고정점인 대통령의 군통수권 기반 약화를 초래할 것이다. 군인들은 능력이 부족한 상관은 용납해도, 신뢰를 상실한 상관에게는 복종하지 않는다.

<한설 | 예비역 육군준장·순천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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