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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항상 자기극대화와 영속성을 지향한다. 그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권력 스스로에 의한 권력의 절제와 분산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권력의 흥망에 관한 인류의 역사가 이를 생생히 증언해준다. 집중된 권력은 항상 부패했으며, 권력이 극대화로 치달을 때 권력의 위세를 시험하기라도 하듯 권력은 예외 없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유린했다. 따라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최대한으로 보장되는 자유국가를 이루기 위해 권력의 남용 방지가 최우선적 과제가 된다.

또 이를 위해서 권력으로써 권력을 견제하는 장치들을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생각을 프랑스의 퇴임 고위법관인 몽테스키외가 18세기 중반에 그의 역저 <법의 정신>에서 정리한 것이 바로 삼권분립론이다. 즉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권력을 입법권·사법권·행정권으로 분할하고, 이들 권력을 각각 분리·독립된 별개의 국가기관들에 분산시킴으로써 특정의 개인이나 기관에 국가권력이 집중되지 않도록 하고, 더 나아가 권력상호 간에도 여러 견제장치들을 두어 견제를 통한 균형을 유지하도록 하는 헌법상의 기본원리 말이다. 이러한 고전적 권력분립론을 한층 발전시킨 현대의 ‘기능적 권력분립론’은 ‘국가권력의 분립’을 ‘국가기능의 배분’이라고 보면서 권력분립의 개념 대신에 ‘국가기능의 분할’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국가기능을 정책결정, 정책집행과 함께 ‘정책통제’ 기능으로 나눈다. 이때 ‘정책통제’의 하나로서 ‘기관 상호 간의 통제’를 중시한다. 즉 현대의 기능적 분립론에서는 같은 행정부 내부에서도 행정권을 분산하고 상호 견제를 할 수 있게 함으로써 ‘기관 상호 간의 권력통제’를 이루는 데에도 방점을 둔다.

결론부터 말해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도입은 검찰에 집중된 수사권과 기소권의 일부를 공수처에 분산함으로써 현대의 권력분립론이 지향하는 기관 상호 간의 권력통제를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믿는다. 헌법의 기본원리들 중 하나인 권력분립원리를 국가의 사정기능 수행과 관련해 구현해 내려는 헌법실천적 제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우리나라 검찰은 수사권, 경찰의 수사에 대한 수사지휘권, 영장청구권, 재판에 넘길지 여부를 결정하는 기소권, 재판에서의 공소유지권, 유죄판결 이후의 형집행권 등 광범위한 형사사법의 사정권한들을 독점하고 있다. 재판권을 제외하고는 모든 형사절차상의 권한들이 검찰에 주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검찰에의 막강한 권한 집중은 세계적으로 유사한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이러한 집중된 검찰권의 행사와 관련해 우리 검찰은 권력형 비리사건들에서 검사에 대한 인사권을 쥔 대통령이나 여당 권력으로부터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지 못한다는 비난에 시달려왔다. 이러한 정치적 중립성 시비와 관련될 수밖에 없는 전직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판검사 등 고위공직자 및 그 가족의 비리를 수사, 기소할 수 있는 권한을 나누어 가지는 독립기관을 두자는 것이 바로 공수처 아이디어이다. 사정권한의 분산은 검찰과 공수처 간에 선의의 경쟁을 통한 상호 견제를 유도해내고 전체적으로는 사정권한의 합리적인 행사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선의의 경쟁은 길게 보면 검찰권력의 지나친 비대화를 막을 수 있고, 정치적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기소 부담을 덜어 정치적 중립성 시비를 줄이는 데에도 기여할 것이다. 검찰 스스로를 위해서도 유익한 제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1996년 당시 야당인 새정치국민회의가 발의한 부패방지법에 내용으로 들어간 이 공수처 아이디어는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수차례 법안 발의까지 되었으나 무산되었다. 지금 현재도 3개의 공수처 설치 관련 법안이 발의되어 있고, 법무부도 법무·검찰개혁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곧 공수처 관련 법안을 만들어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치열한 토론을 통해 바람직한 내용의 공수처법을 만들어 통과시켜야 한다. 공수처는 그 정치적 중립성 확보가 생명이다. 공수처장을 비롯한 공수처 구성원들의 임명에 있어 어느 한 권력이 이를 좌지우지할 수 있게 해서는 안될 것이며, 공수처의 직무수행 과정에서도 독립성을 보장할 세밀한 장치들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검찰에 의한 기존의 지나친 권한 집중상태는 헌법적으로 비정상이다. 공수처 도입은 헌법상의 권력분립원리의 명령에 따라 이러한 비정상을 정상화시키라는 국민들의 당연한 요구를 이행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일 뿐임을 국회는 꼭 명심해야 한다.

<임지봉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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