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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人事)는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하는 상징적인 ‘창(窓)’이다. 직접 현장을 찾는 소통도 있지만, 그 정권의 성격과 국민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는 인사는 더욱 중요한 소통 장치일 수 있다. 이처럼 인사는 국정철학이 표출되는 첫 통로다. 실상 민주화된 정부에서 대통령의 가장 근본적인 권한은 인사권과 예산권이다. 인사로 비전을 펼쳐보이고, 예산으로 구체적 실행을 뒷받침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일 “인사원칙과 검증의 구체적 기준을 마련해주기 바란다”며 참모들에게 ‘인사시스템 개선’을 당부했다. “지금까지 인사를 되돌아보면서…”라는 말처럼 조각 인사의 소회를 담은 당부였다. 안경환 법무장관 후보자부터 이유정 헌법재판관 후보자까지 5명이 낙마한 성적표에 불만족과 당혹감이 배어든 토로로 들렸다.

문 대통령이 인사의 어려움을 토로한 것은 대통령으로서가 처음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때인 2006년 5월 그가 민정수석까지 3년여 청와대 생활을 접고 자연인으로 돌아갈 때 일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음 편하게 기자들을 만난다”며 홀가분한 모습으로 대화를 이어가던 문 대통령은 ‘인사’ 이야기를 꺼냈다. 요지는 인사검증을 해보니 지도층의 도덕성 문제가 생각 이상으로 심각했고, 기준대로라면 쓸 인재가 없다는 것이었다. 조심스레 기준을 좀 더 현실화·정교화할 필요가 있다는 고언도 따랐다. 인사와 검증은 그의 심중에 남은 오랜 그늘인 것이다.

최근 문재인 정부 1기 말미 인사들을 보면 인사의 창은 ‘탁’하다. ‘인사 실패-논란-변명-낙마’로 이어지는 ‘고집 인사’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초기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처럼 선명한 메시지를 담은 인사로 정권의 비전과 환호가 만나던 ‘사이다’ 같은 소통의 창은 더 이상 아니다.

촛불로 탄생한, ‘소통(疏通) 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부도 인사의 저주는 피하진 못한 셈이다. 지도층의 취약성 때문인지, 정권의 ‘사심’ 때문인지는 따져볼 부분이 많다.

인사 내용만큼이나 인사의 이미지를 결정짓는 것은 그 인사가 일그러졌을 때 이에 대처하는 권력의 태도다.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은 두 가지로 집약된다. 우선 문재인 정부 국정철학과 맞냐는 의문이다. 그 연장선에서 ‘뉴라이트 탕평’ 비판처럼 ‘도대체 인사철학이 뭐냐’는 반발이 생겨난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청와대의 기묘한 논리다. 소위 ‘생활보수’란 신조어와 ‘소시민’ 속에 담긴 해명의 부적절함, 사려깊지 못함이다. 전혀 논리적이지도 않다. ‘생활보수·소시민’이 생활에 바빠 역사·정치관이 부족할 수 있다는 변명인지 모르나, 그것이야말로 국민과 정치를 이간질하고 시민들을 우매하게 보는 권력자의 논리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여권에서조차 갖은 뒷말만 만들어진다. ‘도대체 누가 추천했나’라는 타박이 동기일 터인데 ‘부경파(부산·경남파)’부터 ‘양산파(경남고 인맥)’ 추천설까지 난무한다. 물밑 인사암투의 그림자마저 어른거린다. 지지층이 동요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 모두 불길한 신호로 보이기 때문이다.

징후들은 더 있다. 결국 낙마로 끝났지만 이유정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에서도 불길함은 감지된다. 이 후보자가 낙마한 마지막 순간까지 청와대 반응은 “불법·위법은 없었다”는 것이었다. 후보자 명예에 대한 배려이고, 그를 대신한 ‘억울함’의 표현일 수 있다.

하지만 진정 억울함은 1년 반 동안 주식으로만 12억원의 수익을 올리는 현실을 봐야 하는 서민들 몫일 것이다. 그것도 투기가 아닌 투자로 봐야 하는 박탈감이다. 이 후보자의 낙마는 ‘코드’였기 때문이 아니다. 바로 국민들이 인사권자와 공직자들에게 요구하는 ‘도덕감정’에 반했기 때문이다. ‘법’이라는 동문서답은 박탈감만 키운다.

인사의 적절성을 따지는 기준은 몇 가지다. 자질과 경험이 업무와 부합하는가. 생각과 가치가 주권자들 기대와 맞는가. 또 삶이 국민 일상의 감정과 어긋나지 않는가이다. 이에 반하는 것은 정확히 말하면 국민들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에 반하는 것이다.

인사의 창에 조금의 얼룩도 없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완전무결함은 이상일 뿐이다. 하지만 방향이 정반대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더구나 그것을 전임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실수를 실수로 인정치 않는 완고함으로 미봉하려 한다면 사정은 더욱 달라진다. 그 경우 주권자들은 문재인 정부 인사에서 빠진 것은 ‘정의’라고 느끼게 될 것이다.

그래서 ‘시스템 개선’ 주문으로 끝맺은 문 대통령의 조각 인사 결산에 착잡함이 남는다. 진짜 성찰과 개선은 당장의 일그러진 것을 바로잡을 때 시작되기 때문이다.

<김광호 정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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