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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적인 한 해가 가고 있다.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였고 그곳에서 동료시민들을 발견하였다. 시민성은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켰고, 소문과 짐작으로만 떠돌던 청와대 주변의 무능과 비행의 철갑이 조금씩 벗겨지고 있다. 역사는 아마 우리가 겪은 한 해를 한국에서 시민들이 승리한 결정적인 장면으로 기록할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대견하고 자랑스러워할 만하다.

그러나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물론 몇몇 범죄자들은 감옥에 갈 것이고, 조만간 혹은 언젠가 정권이 바뀔지 모른다. 그러나 대통령을 갈아치우고 헌법을 다시 쓰며 몇몇 잡범들이 감옥에 간다고 해서 더 좋은 세상이 오지 않을 것임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여전히 새해에도, 우리는 어제의 그 옷을 입고 어제의 그 전철을 탄 채, 어제의 그 스마트폰을 외로이 들여다보면서 어디론가 바뀌지 않는 고단한 삶을 버티러 바삐 움직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단단한 삶의 일상성만큼이나 고집스레 바뀌지 않는 것들이 있다. 예컨대 20대의 대학생인 용혜인씨는 지난 11월 초 검찰로부터 징역 2년을 구형받고 이제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세월호 참사 직후 2014년 5월18일, 추모 침묵 행진을 제안하고 주최자로서 경찰에 사전 신고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신고된 시간과 장소를 벗어났다고 주장하는 검찰은 용씨에게 해당 집회뿐 아니라 ‘단순 가담’한 여러 집회와 관련된 혐의까지 덧붙여, 그 이름도 친숙한 ‘집시법’과 최고법정형이 10년에 이르는 ‘일반교통방해죄’로 기소하였다. 나는 검찰이 광장을 뒤덮은 촛불집회 참여자들은 왜 기소하지 않는지 궁금하다. 용씨는 다만 우리보다 2년 반 먼저 광화문광장에 도착했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추모 침묵 시위에서 손에 들었던 것은 국화 한 송이와 ‘가만히 있으라’는 팻말이었다. 그것 이외에 할 수 있는 것이 또 무엇이 있었을까. 그 슬픔과 안타까움과 추모의 마음이 지금도 그대로인 것처럼, 세월호 또한 여전히 같은 장소에 침몰해 있으며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시종일관 변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 국가의 끝을 알 수 없는 무능과 실패라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세월호 사건이 우리에게 던지는 두 개의 질문. 과연 침몰의 원인이 무엇이며 왜 정부는 인명구조에 실패했는가? 정부는 어느 질문에 대해서도 시민과 유가족에게 가장 기본적인 것을 알리고 납득시키는 데 실패하였다. 실패하였을 뿐만 아니라 방해하였다. 방해하였을 뿐만 아니라 은폐하였다.

어렵사리 구성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은 정부에 의해 철저히 외면당했고 무력화된 채 종료됐으며, 남겨진 기록조차 국가기록원에 봉인될 위기에 처해 있다. 정부는 필요한 정보를 제때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고 의혹만 늘려갔다. 그저께 인터넷에 개봉된, 한 ‘네티즌’의 개인적 자료 수집과 연구를 토대로 재해석된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한 8시간49분짜리 비디오에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높은 관심을 보인 사실은 역설적으로 우리 정부의 실패를 보여준다. 그 비디오가 제기하는 가설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제대로 된 정보만 제공되었다면 얼마든지 기각할 수 있는 가설이기 때문이다. 그런 정부가 여전히 귀를 열어 듣지 않으려 하고, 여전히 추모의 마음과 슬픔조차 재판정에서 기소하고 처벌하려 하는 것은 놀랍지 않다.

2016년이, 그리고 세월호 1000일이 우리에게 준 교훈이 있다면 세상은 가만히 있으면 조금도 좋아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때로는 미래를 재보지 않고도 우리가 그냥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사실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용씨의 최후진술은 의미심장하다. “누군가 저에게 후회하냐는 질문을 한다면 저는 망설임 없이 후회하지 않는다고 답할 것 같습니다. 저는 여전히 그것이 살아남은 사람의 책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광장에 사람들이 모였던 이유는 세상을 치유하기 위해서도,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도 아니었고, 다만 살아남은 사람들의 뒤늦지만 미안함의 몫이었던 것 같다. 광장에는 그런 사람들이 까맣게 몰려나와 있었고 낯선 이들이 말 걸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여전히 새해에도 우리는 어제의 그 옷을 입고 어제의 그 전철을 탄 채, 어제의 그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서 어디론가 가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새해에는 그런 삶의 여정이 조금은 덜 외로울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 저마다 삶의 무게를 짐진 채 광장을 천천히 함께 걸었던 이웃들이 어디에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팽목항의 어두운 바다에서, 그리고 우리 마음의 심연에서 세월호를 길어올리게 될 봄이 저만치서 뚜벅뚜벅 오고 있다.

박원호 | 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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