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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민국에서는 대의제의 위기가 진행 중이다. 국회라는 국민의 대의기관이 다수 국민의 뜻을 국정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당리당략에 매몰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촛불혁명은 선거를 통해 뽑힌 두 개의 대의기관인 ‘대통령’과 ‘국회’가 다수 국민의 뜻을 국정운영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대의제의 실패를 보였기 때문에 주권자인 국민이 이러한 대의제의 오작동을 바로잡고자 직접 들고일어난 혁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대의제의 위기는 우리나라만 겪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민혁명을 통해 절대왕정이 무너지고 근대가 열리면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성문헌법을 앞 다투어 제정했고, 근대의 성문헌법들은 시민의 정치 참여방식으로 예외 없이 대의제를 규정했다. 이 대의제원리란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국가의사나 국가정책을 결정하지 않고 대표를 뽑아 그 대표로 하여금 대신 국가의사나 국가정책을 의논해서 결정하게 하는 원리’로 정의된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 서구 국가들에서는 예외 없이 이 고전적 대의제에 위기가 발생했다. 의회라는 대의기관이 다수 국민의 뜻과 괴리된 의사결정을 빈번히 내림으로써 의회를 통한 민의의 대표기능에 빨간불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러한 대의제 위기의 발생 원인으로는 정당정치의 왜곡된 발달로 인해 국회의원이 국가의사의 결정과정에서 다수 국민의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고 당리당략에 따른 정당의 기속을 받게 된 점, 다양한 이익·압력단체의 등장과 이들 단체의 정치자금 등을 통해 국회의원들에 대한 로비가 횡행하게 된 점, 정치과정에서 국민의 직접 참여 욕구가 크게 증대된 점 등이 꼽힌다.
우리보다 앞서 고전적 대의제의 위기를 경험한 서구 선진국들은 이러한 대의제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존의 대의제에 직접민주제적 요소를 과감히 결합하는 ‘현대형 대의제’를 헌법에 규정하는 것에서 활로를 찾았다. 즉 적어도 최종적으로는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정치과정에 개입하여 여야 정당 간의 대립을 조정하고 부패공직자의 비위를 시정하며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 보완적 장치들을 헌법에 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19세기 말의 스위스를 시작으로 독일, 프랑스, 영국, 일본,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베네수엘라, 북유럽 등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이미 이 ‘현대형 대의제’를 개헌 등을 통해 받아들였다. ‘현대형 대의제’가 채택하고 있는 직접민주제적 장치들에는 세 가지가 있다. 헌법안이나 법안, 중요한 정책을 국민이 투표로 직접 결정하는 국민투표제, 국민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어 헌법개정안이나 법률안을 제안할 수 있는 국민발안제, 국민이 임기 만료 전에 공직자를 해직시키는 국민소환제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국민투표제는 헌법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에 대한 국민투표를 통해 현행헌법에도 도입되어 있다. ‘현대형 대의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외에 개헌을 통해 국민발안제와 국민소환제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성이 크다고 믿는다.
특히 국민발안제는 과거에 이미 우리가 18년간 헌법에 도입했었던 제도이다. 1954년의 제2차 개정헌법 제98조가 헌법개정안은 대통령, 일정 수 이상의 국회의원 이외에 국회의원 선거권자인 국민 50만명 이상의 찬성으로 발의한다고 규정한 이래 헌법개정안에 대한 국민발안제는 1972년의 유신헌법에서 삭제되기 전까지 우리 헌법에서 유지된 바 있다. 국민소환제와 관련해서는 이미 우리도 지방자치 단계에서 지방자치법에 주민소환제를 법제화해 운용해오고 있다. 과거 국민발안 인정 시 발생했던 문제점, 지난 10여년간의 주민소환제 운용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들에 대한 면밀한 검토 이후에 발전적인 방향에서 개헌을 통해 국민발안제와 국민소환제를 도입해야 한다.
특히 이번 촛불집회의 과정들을 통해 국회의원 소환제를 요구한 국민의 목소리가 상당히 컸음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물론 직접민주제가 대의제를 완전히 대체할 정도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현대형 대의제’로 나아가기 위한 직접민주제의 도입은 대의제의 위기를 극복하고 대의제를 정상화하는 보완적 수준에 머물면 족하다.
촛불혁명에서 드러났듯이 국민의 직접참여 욕구는 이미 팽배해 있다. 이러한 주권자 국민의 변화된 욕구들을 개헌을 통해 담아내지 못하고 누르기만 한다면 큰 정치적 혼란이 올 수도 있다. 헌정질서의 계속성과 함께 정치적 안정성을 증진하기 위해서라도 개헌을 통한 직접민주제의 보완은 필수다. 그것이 국민이 시작한 촛불혁명의 진정한 ‘완성’이기도 하다. 원래 혁명은 개헌으로 완성된다.
<임지봉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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