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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지 기자를 하던 10여년 전 나에게 일을 가르쳐준 사수가 있다. 편집주간이던 그분 밑에서 많은 일을 배웠다. 그를 얼마 전에 만났다. 몇 명이 모인 자리에서 그는 심리학 잡지를 곧 창간할 예정이라고 했다. 국내 유명 심리학 교수들로 편집위원회가 꾸려졌고 글을 쓰고 다듬을 박사급 진용도 갖춰져 있었다.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격월간으로 나오는 잡지는 심리학의 주요 이슈를 상당히 깊이 있게 다룰 예정이다. 특집의 메인 기사는 원고지 50장이 넘는다. 요즘 젊은층에서 유행으로 번지는 ‘자해’ 문화를 심리적으로 읽어내고 처방하는 것이 특집의 주제가 될 수 있겠다. 뇌과학 발전에 연동된 심리과학의 소개가 한쪽 진영을 이룬다면 실제 현장에서 이뤄지는 상담심리의 동향과 ‘How To’식의 정보 전달이 다른 한 진영을 이룬다. 상담심리는 우리 사회의 거대한 영역으로 자라고 있다. 요즘 학교마다 직장마다 전문 상담사가 속속 갖춰진다. 그만큼 현장의 수요가 폭발 중이다.

그날 모임에서 표지 디자인 시안을 함께 보면서 의견을 나누었다. 잡지 운영은 사회적 수요가 큰 만큼 잘될 가능성도 높지만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난관도 몇 가지 있는 듯했다. 잡지라는 것, 성공하기 그렇게 쉬운 아이템이 아니니까 말이다.

아무튼 이런 이야기는 나에게도 상당한 자극 요소가 되었다. 꽤 심하게 공황장애를 겪었던 나는 출판사를 시작하며 심리학을 한 축으로 삼았었다. 미국에서 클리닉을 연 사이코테라피스트의 책을 두 권 연속으로 펴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개인적 상황도 많이 좋아지고 사회적으로 심리에 대한 책이 쏟아져 나오는 데 압도돼 발을 빼고 말았다. 비슷한 사례의 무한 나열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수의 잡지 창간을 목전에 두고 보니 단행본 출판에서도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갈래가 넓은, 정보가 많고 논의를 깊게 진행한 책들을 갖춰 나가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란 판단이다.

최근 들어 이해하기 힘든 잔혹한 폭력범죄가 하루 건너 하나씩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국내 뉴스에선 칼과 손발이 사용되고, 해외 뉴스에선 주로 총이 사용된다. 모두 납득하기 힘든 증오와 살인 충동에 따른 잔혹 범죄였다. 이에 대한 대중적 분노도 엄청났다. 애꿎은 법원까지 ‘심신미약’이라는 면죄부를 발행해주는 교단이 된 듯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이런 대중의 도덕적 분노 반대편에서는 공격적 범죄에 대한 학습과 전염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기성세대는 과거보다 먹고살 만해진 요즘 왜 사람들이 과도하게 고통스러워하고 심지어 타인의 생명을 해치는지 이해하기 힘들어 한다. 여기엔 모든 건 상대적이라는 말로 답을 대신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인간은 현 시점에서 자신과 다른 사람을 비교하는 존재다. 현재에 만족할 수 없고 미래조차 나아질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면 그 ‘걱정’은 벌레가 되어 그들의 영혼을 갉아먹는다.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은 개인의 분노 게이지를 높이는 대표적 주범이다. 우리가 곧 펴낼 엘리자베스 워런의 <이 싸움은 우리의 싸움이다>라는 책에는 월마트에 근무하는 지나의 인터뷰가 나온다. 그녀는 회사가 최대 이익을 달성했던 연도에 경영진이 근로자들의 최저임금을 올려준다고 하자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회사가 고작 시간당 21센트를 올리자, 그녀는 “누군가 내 얼굴에 침을 뱉은” 기분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경쟁 격화와 고용 불안, 저임금의 불평등을 견디다보면 ‘육체적 건강’까지 악화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심리적 문제가 육체적 징후로 드러나는 것이다.

문명의 결과인지 자연의 결과인지 모를 이 거대한 리스크를 우리 모두 개선해 나가야겠지만 또한 매일 매일 사건이 되어 나타나는 그 리스크를 누군가가 받아내야 한다면 거기서 심리학의 역할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심리학은 자기 심리를 파악하고 수련하는 도구이자, 사회의 건강도와 위험 수위를 측정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다.

이는 종교 기능의 약화와 정비례 관계를 보이고 있다. 사회적 모순을 가리고 불평등한 삶을 받아들이게 해주는 종교적 신성함이 녹아 사라지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하느님과 부처님은 더 이상 현대인의 상처를 치료해주지 못한다. 아니, 치료는 해주지만 상처는 자주 재발한다. 현대인은 마치 잘 듣지 않는 항생제를 과다 투여하듯 광신의 레토릭으로 스스로를 유지하고 있다. 이제는 셀프 치료의 시대다. 심리학은 이런 셀프 치료 시대의 작은 종교가 되어가고 있다.

<강성민 |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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