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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인 지난 16일 오후 4시16분에 광화문 세월호광장에 유가족과 시민들이 모였다. 간단한 설 인사를 마친 뒤에 합동분향소에 국화꽃 한 송이 올리고 그 앞에서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네 번째 지나는 설이라서인지 예년과 달리 시민들이 많지 않아서 더욱 쓸쓸했다. 지난해 설까지는 정치인들도 모이고, 시민들도 북적였던 것에 비하면 너무 한산했다.

<!--imgtbl_start_1--><table border=0 cellspacing=2 cellpadding=2 align=RIGHT width=200><tr><td><!--imgsrc_start_1--><img src=http://img.khan.co.kr/news/2018/02/20/l_2018022101002356800201051.jpg width=200 hspace=1 vspace=1><!--imgsrc_end_1--></td></tr><tr><td><font style=font-size:9pt;line-height:130% color=616588><!--cap_start_1--><!--cap_end_1--></font></td></tr></table><!--imgtbl_end_1-->두 달 뒤면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4년이 된다. 벌써 4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우리는 아직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 배가 침몰하는데 왜 구조는 안 했는지를 모른다.

지난해 3월10일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 정부에서는 이런 기초적인 진실조차도 밝히지 못하도록 극악하게 방해했다. 최근에 검찰 수사로 드러나고 있지만 예전의 해수부 장차관이 세월호 특조위가 조사를 못하도록 방해하고, 특조위를 강제 종료시키는 데 앞장서기까지 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강압적으로 묻으려던 정권은 몰락했고, 관련자들은 감옥에 가 있다. 지난 정권에서 핍박 끝에 강제 종료된 세월호 특조위는 ‘사회적참사진상규명특별조사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재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는 목포 신항에 누워 있는 세월호를 바로 세우기 위한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안산에서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이들을 기억하기 위한 ‘4·16생명안전공원’ 작업이 추진되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예전의 재난참사 유가족들과는 달랐다. 정부의 회유에 넘어가지도 않았고, 분열하지도 않았다. 보상금도 거부하고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까지 진행하고 있다. 그들은 오로지 한 가지 목적,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서 삭발도, 행진도, 단식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래서 광화문에 모였던 백만의 촛불들은 기꺼이 세월호 가족들에게 행진의 앞자리를 내주었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은 문재인 정부가 소홀히 할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그래서인가. 세월호 얘기만 나오면 적극적으로 반응하면서 꼭 진실을 밝혀야 한다던 목소리는 잦아들어 있다.

아직도 세월호냐고 타박하는 이들도 늘었다. 문재인 정부가 알아서 해줄 텐데 이제는 지켜보자는 이들도 많아진 것 같다.

설날 광화문에서 만난 유가족들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네 번의 추석과 네 번의 설이 지나는 동안 그들은 명절이 더 서러운 날이 되었다. 떡국을 끓여도 맛나게 먹어줄 아이가 없으니 집에서 떡국을 끓이지도 않는다. 그들에게는 지난 정권에서 어려울 때마다 함께 손을 잡아준 시민들이 있어서 힘이 되었고, 그들의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약속이 의지가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시민들의 약속은 흐려졌고, 곁을 지켜주던 시민들은 대부분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 유가족들에게 가장 두려운 건 잊히는 일이다. 삼풍이, 대구지하철이, 씨랜드가, 춘천산사태가, 남영호가, 훼리호가 잊혔듯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다는 게 가장 힘든 일이다. 잊히지 않기 위해서, 기억되기 위해서 세월호 유가족과 피해 당사자들은 ‘4·16재단’을 만드는 일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세월호에서 아이들을 잃은 이 유가족들이 본 세상은 돈만 좇고, 경쟁과 효율만 앞세우는 야만사회였다. ‘돈 중심의 사회’가 아닌 생명과 인간존엄성이라는 가치가 중심이 되는 그런 사회 한번 만들었으면 하는 간절한 염원으로 4·16재단을 만들고 있다.

자신들의 아이들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지만 그 아이들의 친구들과 그 또래들과 그 후배들이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 재단, 재단을 통해 안전사회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 그들은 백만명의 기억위원들이 한 번 1만원씩만 내면 재단을 만들 수 있지 않겠냐고 생각한다. 여유 있는 개인이나 가족 단위로, 모임이나 단체로 100만원을 내면 발기인으로 참여할 수 있다. 시민들이 움직이기 전에 유가족을 비롯한 피해 당사자들이 먼저 한 가정당 500만원씩을 출연하기로 했고, 현재 150가정이 참여하고 있다.

4·16재단은 세월호 유가족이나 그 피해 당사자들을 위한 재단이 아니다. 비극이 반복되지 않게 하는 일종의 생명보험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끝까지 가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이들이 함께하는 국민재단이면 더욱 좋겠다. 4·16 이후는 이전과는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설 다음날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1500m에 출전해 4위를 한 김아랑 선수의 헬멧에서 선명한 노란 리본을 보았다. 아직도 세월호를 잊지 않고 있는 이들이 있어서 조금은 위안이 되는 설 연휴였다.

<박래군 | 인권재단 사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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