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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일요일은 쉬게 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 “삼반세력 타도하자!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사회가 돼야 한다.” “아이들에게 힐리스인지 뭔지를 사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지키지 못해서 미안하다.” 1970년 11월13일 청계천 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 1986년 3월17일 구로공단 노동자 박영진, 2003년 한진중공업 노동자 김주익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전태일이 “나에게 대학생 친구 한 명만 있었다면” 하고 일기에 썼다면 박영진은 그런 대학생 친구를 가진 노동자였다. 1980년대 중반 변혁운동의 싹을 틔우던 대학가는 1984년부터 전태일추모제를 개최하며 전태일을 열사의 기원으로 소환했다. 구로지역의 노동야학에서 대학생 친구를 만나 그들의 언어를 배운 박영진은 사망 직전 “전태일 선배가 못다 한 일을 내가 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박영진이 “삼반세력 타도”를 외친 것처럼 1980년대와 1990년대 여러 노동열사들은 “자본가 타도”와 “군부독재 타도”, “노동해방”과 “민주노조 사수” 같은 대의명분을 외치며 몸에 불을 붙였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상황은 바뀌어갔다. 김주익이 힐리스라는 단어로써 한진중공업의 노동 착취를 고발한 것처럼 2003년 1월9일 배달호는 “약 6개월 이상 급여 받은 적 없지만 이틀 후 역시 나에게 들어오는 돈은 없을 것”이라며 급여를 가압류한 두산중공업을 비난했고, 2004년 2월14일 박일수도 “그 많은 복지시설은 직영노동자만 사용한다”며 소박한 말로써 하청노동자도 인간임을 강변했다.

노동열사의 유언이 지식인의 언어에서 노동자 자신의 언어로 바뀌게 된 것은 노동운동이 지식인의 영향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식인들은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을 구분했지만 노동자에게 임금인상과 민주노조 사수,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해방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었다. 거꾸로 지식인들은 독재정권을 타도하면 자본가 세상이 타도되고, 민주노조 사수는 민주정권 수립과 다르지 않은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달랐다.

최초의 민주정부인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던 1998년 2월 대우중공업 최대림이 노사정위원회 합의안의 국회 통과를 막기 위해 분신했다. 그가 죽음으로써 막으려 했던 합의안에는 훗날 수많은 노동자들의 죽음을 불러온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가 담겨 있었다. 참여정부 시기에는 손배·가압류가 새로운 노조 탄압 수단으로 등장했다. 배달호, 김주익의 죽음이 이 때문이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분신으로 투쟁하는 시대는 지나갔다”며 이들의 죽음을 외면했고 2005년부터는 손배·가압류가 다시 급증했다. 그리고 지금 세 번째 민주정부는 사업장 내 쟁의활동 금지, 단체협상 유효기간 연장 등을 담은 노동법 개정안을 국회에 상정해놓고 있다.

‘조국사태’에서 그의 계급 대물림 시도를 곱지 않게 본 사람들조차 법무부 장관 임명에는 반대하지 않은 까닭은 진영논리 때문이었다. 조국 수호는 민주정부를 지키는 일이었고 그 반대는 자유한국당에 주도권을 넘겨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광화문과 서초동 모두 참가하지 않으며 ‘적을 이롭게 하는 자’ ‘공허한 도덕주의자’ ‘좌익소아병에 걸린 이상주의자’라고 비난받은 이들은 누구였을까? 

과거 민주화운동 진영은 정치투쟁의 이름으로 노동운동, 농민운동, 빈민운동을 독재정권 타도와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이분법적 전선으로 동원했다. 민주정부가 수립되고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되면 실질적 민주주의와 노동해방, 민중해방도 뒤따를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지금 세 번째 민주정부가 노동법 개악을 시도하는 이 순간에도 여전히 우선순위는 조국 수호를 통한 민주정부의 사수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국사태에서 적을 이롭게 한 도덕주의자와 좌익소아병자들의 정체도 분명해진다. 이들이 서초동 참가자들처럼 ‘우리가 조국’이라는 구호로 자신과 조국과 문재인 정부를 동일시하지 않은 까닭은 현 정부와 자신이 같은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면 조국 수호자들이 이들을 여전히 같은 편이라고 생각해 ‘적을 이롭게 하는 자’ 정도로 치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벌써부터 시끄럽다. 이해찬 대표가 20년 집권론을 내걸었던가? 꿈을 이루려면 민주정부가 누구의 편인지, ‘민주’의 내용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11월9일 전태일 추모 49주기 전국노동자대회가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다. 민주정부가 세 번 집권할 동안 노동권이 점차 후퇴하게 된 데에는 과거 민주화운동 전선에 동원됐던 노동운동이 민주정부와 자신을 동일시했던 까닭도 있다. 민주노총은 이번에야말로 문재인 정부에 분명히 경고해야 한다. 노동권 보장 없이 총선 승리는 없다는 것을.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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