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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정동칼럼]불면의 20대

opinionX 2017. 9. 1. 14:24

“추운 곳에서 옷을 벗으면 감기에 걸리고, 2017년의 서울에서 돈이 없으면 우울증에 걸린다. 무얼 먹고 살아야 하나를 어제오늘 점심을 굶은 채로 고민한다. 불멸의 이순신이 지킨 나라에 불면의 이십대가 안녕히 살아가신다.”

대학생들의 인터넷 익명 게시판에서 본 글이다. 음식이 넘쳐나는 세상에 결식 대학생이라니 낯설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끼니를 걸러야 할 정도로 궁핍한 삶에 대한 글은 종종 눈에 띈다. 등록금과 생활비 때문에 어떤 학생들은 한 학기 학교를 다니려면 한동안 휴학을 하고 돈을 벌어야 한다. 어떤 학생들은 고된 살림살이에 지쳐 쉬고 싶지만 하루빨리 졸업하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기에 휴학도 할 수 없다. 해외여행이나 교환학생이 당연시되는 것만으로도 상처다. 돈벌이 때문에 학업에 지장이 생기고, 취업준비도 마음껏 할 수 없다. 이른바 ‘스펙’을 쌓는 데도 돈이 필요하다. 같이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며 타인과 친분을 쌓는 문화에선 움직이면 돈이다. 가난은 학업, 취업준비, 연애, 교우관계를 모두 방해한다.

부모의 철저한 관리와 후원을 받으며 자란 학생들이 경제적으로는 물론 심리적으로, 지적으로 자립하지 못하는 경우에 대한 우려는 익숙하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엔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로 혼자 학비와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학생들도 있다. 대학생이면 성인인데 당연한 일일 수도 있지만,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학비를 지원받지 못하는 대학생이 학비와 생계를 해결하며 공부까지 하기엔 현실이 너무 벅차다는 점이다.

1인 가구로 살든, 형편이 어려운 부모와 같이 살든 청년들의 빈곤은 가령 노인 빈곤보다는 덜 눈에 띄고, 사회적으로도 덜 주목받는다. 청년들 중 특히 취업기회를 아예 얻지 못하거나 빈곤 직업군을 전전하는 초·중·고등학교의 퇴학, 자퇴생들의 빈곤은 심각하다. 그러나 빈곤 청년들 중엔 분명 대학생도 있고(중위소득에 이르지 못하는 빈곤층 비율이 10%를 웃돌고 대학 진학률은 80%에 이르는 것을 감안해 보라) 그들에게도 빈곤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다. 학비 조달은 엄청난 부담이다. 취업도 어려운데 빚을 지고 졸업해야 하니, 사회인이 되면 숨통이 트인다는 보장이 없다. 영구빈곤의 공포에 짓눌린다. 빈곤 청년들의 피로,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절망감은 쉽게 표면화되지 않고, 이들은 통계에 잘 잡히지 않는다. 가난을 멸시하는 사회가, 가난만으로도 지친 젊은이들에게 가난을 숨기는 노력까지 요구하기 때문이다.

경제성장에 제동이 걸린 사회에서 계층 상승의 가능성은 크게 줄어든다. 양극화가 공고해지면서 경제적 지위와 상징적 특권은 세습된다. 재벌가는 물론 의사, 판사의 자녀가 의사, 판사가 되고, 교수 자녀가 교수가 되며, 심지어 연예인의 자녀가 연예인의 자녀라는 사실만으로 연예인이 된다. 경제력이 곧 정보력, 문화권력이고, 정보력과 문화권력은 경제력을 유지하기 위한 자산이자 무기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출생이 삶의 큰 부분을 결정짓는 일종의 신봉건사회로 회귀한다.

개인이 이룰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청년들은 냉소적이다. 개인의 힘으로 가난을 벗어나기 어려운 사회를 물려주었으면서도 여전히 개인에게 가난의 책임을 돌리는 기성세대의 자가당착은 죄스러울 따름이다. 이제 가난은 견디면 이겨낼 수 있는 불편이나,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 젊은 시절의 통과의례가 아니다. 경제적 불평등은 재화뿐 아니라 인간적 가치와 명예의 불평등을 고착시키고, 가난은 배고픔뿐 아니라 존중받지 못하는 삶에 대한 수치를 유발한다. 궁핍과 수치를 함께 견디는 피로가 자존감 상실, 무력감, 불면증, 우울증으로 이어지지 않기는 어렵다.

이번주 대학교들 대부분이 가을학기 개강을 맞이했다. 하지만 가난 때문에 새 학기를 맞지 못한 청년도 있다. 며칠 전 전남의 한 저수지에서 발견된 모녀는, 대학생 딸의 학비를 마련하지 못해 애를 태우다가 등록금 납부 마감일에 함께 생을 마감했다고 알려졌다. 죽음은 가난한 청년들에게 낯선 선택이 아니다. 학생들의 휴학 신청을 전자결재하면서, 이 학생들 각각의 형편과 사정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끼니를 걱정하며 냉소와 자조 속에 하루하루를 버틴다면, 매계절, 매학기를 가까스로 넘기며 살아간다면 푸를 수도 없고, 봄기운도 내뿜을 수 없는 그 이십대는 이미 청춘이 아니다. 고령사회를 걱정하고 인구절벽, 저출산을 걱정하면서도 우리는 비좁은 고시원과 반지하 단칸방 속 위기의 청년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른다. 공무원 채용인원 증가는 어쩌면 해줄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이다. 가난이 강요하는 궁핍과 수모에서 유일한 탈출구로 죽음을 생각하는 “불면의 이십대”. 청년들의 가난은 혹독하다.

<윤조원 고려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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