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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컴퍼니 강훈씨가 유명을 달리한 지 이제 한 달여 지났다. ‘망고식스’ 대표로 알려진 그의 죽음에 이제야 애도를 표한다. 대형 프랜차이즈 외식업계 경영자들을 힐난하곤 했는데 내가 황망할 지경이었다. 하여 나도 침묵으로 애도 기간을 지켜야 했다. 강훈 대표의 죽음은 ‘갑’의 죽음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큰 충격이다. 한때는 ‘커피왕’, 커피업계의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던 그의 성공신화는 카페를 열려는 사람들에게는 교과서였다. 그의 리즈 시절은 1998년 외환위기의 폐허 위에 ‘할리스’라는 커피점을 열어 성공시키면서부터다. 바로 ‘카페베네’의 전문경영인으로 명성을 쌓았고, ‘망고식스’라는 디저트카페 브랜드를 2011년 열면서 정점을 찍었다. 대형 연예기획사와 손을 잡아 연예인을 투자자로 끌어들였다. 드라마 주인공들은 망고식스에서 사랑을 고백하고 이별하고 재회했다. 주조연급 출연자는 망고식스의 사장으로 나오기까지 했다.

대형 프랜차이즈들은 기반을 다진 뒤 사업을 확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투자자를 끌어들이고 목표 가맹점수를 정해놓고 공격적으로 가맹 영업을 한다. 해외진출도 초기부터 추진한다. 그래야지만 ‘커피왕’에게 ‘현금왕’들이 붙어주기 때문이다. 한국의 내로라하는 프랜차이즈의 경영방식은 내실을 다지기보다 투자라는 이름의 빚으로 처음부터 무조건 크게 확장시키는 방법을 택해왔다. 결국 이 빚이 유능한 사업가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처음엔 참신하지만 카피 제품은 금방 쏟아져 나온다. 재투자를 받기 위해 서브 브랜드를 만들었지만 이미 포화 상태인 시장에서 본사도 경영자도 질식 상태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여기 또 한 죽음이 있다. 을의 죽음이다. 한때 미스터피자의 가맹점주였던 이종윤씨는 본사 갑질의 실체를 증언해온 사람이었다. 그리고 비슷한 처지의 점주들과 ‘피자연합’이라는 협동조합형 프랜차이즈를 설립한 장본인이다. 갑도 없고 을도 없는, ‘피자대동세상’을 꿈꾸면서 말이다. 미스터피자를 운영하면서 빚을 많이 지고 있었지만 그간 쌓은 피자 만들기 노하우와 견실성을 밑천 삼아 의욕적으로 추진한 ‘피자연합’. 대안 프랜차이즈로 이름도 알려지던 차에 복병은 미스터피자였다. 정우현 회장의 엽기적 갑질은 널리 알려져 있어 지면을 낭비하지는 않겠다. 다만 미스터피자를 떠난 자유인 이종윤씨를 끝까지 쫓아 철저하게 응징을 한 정우현 회장의 근성만은 높게 사줘야 할 것 같다. 현대판 추노질이었다. 정우현 회장은 가맹점을 ‘가족점’이라 불러왔고 그에겐 ‘통치권’이란 것이 있었다. 임직원들의 고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의적으로 판단하여 발동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그리 불렀다. 일례로 미스터피자의 계열사인 ‘마노핀’의 커피값을 900원으로 내려버리라는 긴급조치 같은 것 말이다. 그 통치권에는 자신의 영지를 벗어나 탈출한 노비를 추노하라는 명령도 있었다. ‘가족점’이란 말은 무색했다. 노비는 가족이 아니라 소유물이므로. 그는 가부장도 아닌 봉건영주였을 뿐이다.

몇 달 새 프랜차이즈라는 사다리의 꼭대기와 바닥의 죽음을 동시에 봐야 했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누구나 꿈꾸던 사다리 꼭대기인데. 불행히도 사다리의 각도가 너무 직각이었다. 게다가 튼튼한 벽에 받쳐놓지도 않았다. 커피, 망고주스, 피자라는 단단한 벽체 위에 사다리를 걸쳐 놓은 것이 아니라 물량공세, 공격적 가맹점 모집과 쥐어짜기, 결정적으로 ‘먹튀 자본’이라는 암막커튼에 기댄 무대소품에 가까운 사다리였다.

두 죽음에 깊은 애도를 보낸다. 당신들은 스스로 죽은 것이 아니다. 이는 사회적 죽음이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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