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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정부가 ‘건설산업 생산구조 혁신 로드맵’을 발표했다. 건설산업의 업역규제를 폐지하고 업종체계와 등록기준을 조정하겠다는 내용이다. 이 자리에 건설업계의 노사 대표들도 함께했다. 많은 우려 속에 수십년 묶인 난제를 짧은 기간에 미래지향적으로 그 실마리를 풀어낸 것이다.

먼저, 종합과 전문업체 간 업역 칸막이가 제거된다. 현재는 전문업체는 종합공사 원도급을 받을 수 없고, 종합업체도 전문공사 도급을 받을 수 없다. 앞으로는 상호 시장 진출이 허용된다. 종합공사 주요 전문업종을 등록한 전문업체에는 단독 또는 공동으로 종합공사의 원도급이 허용되고, 종합업체는 세부 전문공사의 하도급이 가능하게 된다. 이로써 고착된 수직적 원·하도급과 수주 페이퍼 컴퍼니의 폐해를 줄이는 한편, 전문 시공기술 역량이 있는 업체가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길을 터주게 되었다. 다만, 10억원 미만 공사의 하도급은 전문업체에만 허용된다. 영세하거나 미래 건설생산의 튼튼한 기반이 될 특화된 시공기술을 보유한 소규모 전문업체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아울러, 갈등이 많고 공법의 융·복합이 필요한 업종은 단계적으로 조정하거나 통합해 나간다. 자본금을 낮추고 기술능력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등록기준도 조정된다. 더불어 업체의 실적, 인력 등 주력분야에 대한 정보가 제공된다. 이러한 정책은 업종 간 분쟁을 줄이고, 발주자가 좀 더 합리적으로 업체를 선택할 수 있게 만들 것이다. 나아가 4차 산업혁명 첨단기술의 융·복합을 통해 생산성과 대외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산업정책은 미시 경제주체인 개인·기업과 거시 국민경제 사이 중위 영역에서 양쪽 모두에 크게 영향을 주게 된다. 건설산업은 한 나라의 장기적인 경제성장의 핵심 요소인 물리적 인프라를 축적해 나가고 있다. 따라서 국가 경제성장에서 건설산업 역할은 지대하다. 그루네베르크는 경제성장과 건설 비중은 흔히 알고 있는 본(Bon)의 역U자형이 아니라 꼬리 달린 벨 모양을 보인다고 했다. 선진국에 이르러서 잠시 주춤하다가 다시 인프라 투자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전·후방 산업연관효과도 매우 크다. 국제통화기금(IMF)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에서 건설이 1%포인트 증가하면 실업률은 1%포인트 낮아진다고 했다.

우리 건설산업은 40여년 전인 1976년 만든 낡은 생산구조에 그대로 머물고 있다. 지금 우리는 국내적으로 사회간접자본(SOC) 투자가 점점 축소되고, 해외시장에서는 경쟁력을 갖춘 후발 개도국의 추격과 4차 산업혁명 첨단기술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늦었지만 근본적인 산업혁신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이다. 더 이상 갈라파고스적 칸막이 안에서 꼼짝달싹하지 못한 채 기술력이 녹슬고 창의적 아이디어가 꿈도 펴지 못하고 스러져가서는 안된다. 발주자도 소비자로서 훨씬 자유롭고 합리적으로 건설업체를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

새로운 생산체계는 2년간 관련 제도 정비를 거쳐 2021년에는 공공, 2022년에는 민간까지 전면 시행된다. 정비기간 동안 정부는 이번 혁신방안의 효과가 제대로 나타날 수 있도록 세심한 조사와 연구를 거쳐 하위 법령과 지침 등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건설업체는 업체대로 변화될 환경에 대한 경영전략과 대응방안을 치밀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번 혁신방안이 나오기까지 큰 고비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동안 치밀한 전략과 뚝심을 보여준 정부의 슬기롭고 현명한 리더십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개별 업체와 업종의 이해를 초월하여 대승적 결단을 내린 건설업계에도 찬사를 표한다. 정부와 업계가 의기투합하여 마련한 새로운 생산체계를 통해 건설산업에 새로운 미래가 열리고, 건설업이 국민들에게 신뢰받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서명교 | 대한건설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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