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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결정이 있었다. 그리고 이 결정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일부 언론에 의해 잠깐 동안 제기됐다. 결론부터 이야기해서 이번의 영장 기각결정은 대통령 탄핵심판의 결론에 별 영향을 줄 수 없다고 본다. 심지어 구속영장이 기각됐다고 해서 그것이 이 부회장에 대한 무죄판결로 바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다.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는 유무죄를 판단하는 절차가 아니라 원활한 수사를 위해 피의자를 구속해 신병을 확보해둘 필요성이 있느냐 여부를 판단하는 절차이다. 따라서 법원의 영장기각은 현재 상황에서 특검 수사를 위해 이 부회장의 구속이 필요한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되므로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하라는 정도의 의미를 가질 뿐이다.

영장 기각결정이 이 부회장의 재판 결과에 미치는 영향도 이렇게 미미할진대, 제3자인 대통령의 탄핵심판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가 인정될지, 이 혐의에서 뇌물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대통령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등은 특검의 기소 이후 법원의 재판을 통해 결정될 부분이기 때문이다. 국회가 본회의에서 통과시킨 대통령 탄핵소추의결서에는 무려 13가지에 이르는 헌법 및 법률 위반의 소추사유들이 적시돼 있다. 그중의 하나가 형법상 뇌물죄 위반일 뿐이다. 설령 뇌물죄 부분에서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가 없다고 헌재가 판단을 내리더라도 다른 12개의 탄핵소추 사유들 중 어느 하나에서라도 대통령을 파면할 정도의 혐의가 입증되면 헌재는 바로 탄핵 인용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지난 2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굵은 눈발과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바닥에 앉아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그러면 이번의 영장기각 결정이 탄핵심판의 속도에는 영향을 줄 수 있을까? 탄핵심판의 결론에 영향이 없는 것과 똑같은 이유로 속도에도 영향이 없다고 본다. 오히려 탄핵심판 공개변론 과정에서 대통령 측 대리인단이 계속해서 지연 전략을 쓰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탄핵심판 초기 첫 답변서에서 최순실씨 등 국정농단 연루자들의 법원 1심 판결도 나오지 않았다며 대통령에 대한 무죄추정의 원칙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탄핵심판을 지연시키려 한 이래로, 여러 쟁점들에서 형사재판에나 적용되는 법리를 헌법재판의 하나인 탄핵심판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시간 끌기에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안종범 전 수석이 작성한 수첩 중 11개가 수첩을 돌려주겠다는 검찰의 약속을 믿고 제출된 것인데 검찰이 이를 돌려주지 않고 압수영장을 청구해 확보한 위법수집 증거라고 주장하면서, 대법원 판례상의 독수독과원칙에 따라 위법수집 증거를 이용해 이루어진 안종범 전 수석의 진술을 담은 신문조서 등도 탄핵심판에서 증거로 사용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탄핵소추사유 중 하나인 대통령의 권한남용 사실을 입증할 결정적 증거에 대해, 형사재판에서, 그것도 구체적 상황에 따라 적용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법리를 들어 증거 채택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심리를 지연시키려 한 것이다. 다행히 헌재는 이에 대해 불법한 압수인지 아닌지는 헌재가 판단할 필요가 없으며 그것은 나중에 형사재판에서 다투라고 하면서 대통령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탄핵심판은 형사사건과 별개라고 본 것이다. 더욱이 바로 다음 날 법원은 안종범 전 수석의 형사재판에서 수첩 모두를 증거로 채택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헌재도 대통령 측 대리인단의 재판 지연 전략에 말려들지 않고 신속한 재판의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헌재는 계속해서 이러한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해야 한다. 대통령 측 대리인단의 추가 증인신청도 시간 끌기를 위한 것으로 판단되면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중요한 쟁점의 심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됐으면 변론을 신속히 종결하고 이제 평의를 통해 결정을 내려야 한다. 헌재의 조속한 결정은 국익이나 국민의 뜻에 비춰봤을 때 꼭 필요하다. 또한 일부 재판관이 퇴임해서 8명이나 7명의 재판관이 탄핵결정을 내리게 되면 그 결정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9명의 결정이 아니라는 이유로 시비를 걸 수도 있다. 헌재 결정의 권위라든지 반대 측으로부터의 시비를 차단한다는 의미에서도 조속한 헌재 결정이 요구되는 것이다.

지난 토요일, 함박눈이 내리는 영하의 날씨에도 광화문에서 열린 제13차 촛불집회에서 32만명의 시민들이 입을 모아 촉구한 것도 헌재의 ‘조기 탄핵’이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탄핵심판을 형사재판처럼 진행해서 시간을 지체할 거라면, 헌법재판관들은 헌재 대법정의 재판관석이 아니라 법원 형사법정의 판사석에 가서 앉아 있어야 할 것이다. 헌재라는 최고법원의 재판관에게 국민이 부여한 막중한 책임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는 말이다. 헌재의 조속한 결정을 다시금 촉구한다.

임지봉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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