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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주말 동시에 구속됐다. 국정농단의 공범이면서도 교묘하게 수사망을 피했던 이들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결국 꼬리가 잡혔다.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는 “범죄 사실이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구속 사유를 밝혔다. 두 사람의 구속으로 박근혜 정부가 정부 비판적인 문화예술인들을 ‘좌파’로 낙인 찍어 각종 지원에서 배제해왔다는 사실은 분명해졌다. 문체부가 오늘 대국민사과를 한다고 한다. 늦었지만 당연한 일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7년 1월 23일 (출처: 경향신문DB)

블랙리스트 대상자들은 문화예술 전 분야에 걸쳐 그 숫자가 무려 1만명에 달한다. 노벨상 후보로 추천받은 작가, 최고 권위의 국제 문학상 수상 작가까지 망라돼 있다. 그들이 한 활동이라 해 봐야 세월호 시국선언에 이름을 올리거나 야당 정치인을 지지한 게 전부다. 헌법은 양심, 언론 출판,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문화예술인을 통제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사상·표현·언론의 자유를 침해한 반헌법적 중대 범죄다. 더구나 이 정부 국정기조로 문화융성을 내세우고 내부에선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빨간 딱지를 붙여 탄압했으니 그 이중성이 가증스러울 뿐이다. 두 사람은 구속 직전까지 “블랙리스트를 본 적 없다”며 거짓말을 밥 먹듯이 했다. 관련 자료를 지우거나 컴퓨터를 폐기하는 등 증거를 없애려고도 했다. 조 전 장관은 장관직을 그대로 유지한 채 영장실질심사를 받아 현직 장관 구속 1호라는 불명예 기록까지 안게 됐다. 고위 공직자의 처신이라고 믿기 힘든 파렴치한 피의자들이다.  

이제 블랙리스트 작성의 최종 책임자가 누군지 밝혀야 한다. 그런 광범위한 명단은 한두 부서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권력기관이 총동원되다시피 했다는 정황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 비판적인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반감을 공공연히 드러낸 것도 수차례다. 속속 드러나는 증거들은 박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작성의 주동자였음을 가리키고 있다. 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고 헌법을 유린한 사상통제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다. 박 대통령 탄핵 사유 중 가장 심각하고 위중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검은 문명국가의 수치인 블랙리스트의 몸통을 반드시 찾아내 그 책임을 철저히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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