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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던가? ‘혹시나’ 했던 기우가 ‘역시나’로 드러났다. 정부가 노인기준을 다시 수술대 위에 올릴 심산이다. 기획재정부는 2017년 주요 업무계획에 노인기준 재정립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본격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인은 ‘신체적, 정신적 노화를 경험하는 사람’으로 정의된다. 1950년 유엔 기준을 근거로 일반적으로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분류한다. 65세가 노화 경험의 객관적 임계치라는 의미다. 그런데 1950년 49세에 불과했던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수명은 2016년 84세 이상으로 증가했다.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 증진을 반영해 노인기준이 재정립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이다.

일면 타당한 노인기준 재정립 논의가 우려되는 까닭은 노인기준의 쓰임새에 있다. ‘노인 등이란 65세 이상’으로 요양서비스의 수급권자 범위를 정한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은 노인기준의 사회적 쓰임새를 보여준다. 노인기준 재정립은 곧 노인이 대상인 사회복지제도 수급권자 범위의 조정과 다르지 않다. 노인기준 조정을 서두르는 정부 의도는 노인기준의 이 같은 쓰임새와 맞닿아 있다.

노인 대상 사회복지제도의 수급권 변경을 염두에 둔 노인기준 조정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우려된다. 우선 제도 대상의 선별기준으로 연령이 갖는 유용성이 감소했다는 점이다. 제도는 욕구에 기반을 둔다. 욕구가 있는 사람이 제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생의 주기에 따라 교육, 노동, 소득 보장의 욕구가 배열되던 사회에서 연령은 제도의 대상을 선별하는 데 적합한 도구였다. 그러나 교육기간이 확장되고, 노동시장 진입과 퇴거가 반복되는 탈산업화 사회에서 욕구는 연령대로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노인기준 연령을 조정해 사회복지제도의 수급권을 재설정하려는 정부의 접근은 욕구의 소재와 제도 수급 사이의 탈각을 확대시킬 염려가 크다.

노인기준의 조정은 노인빈곤을 증폭시킬 문제 또한 안고 있다. 2016년 우리나라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46.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기초연금 확대 전인 2012년 49.2%에서 2.3%포인트 감소한 수치이다. 같은 기간 노인가구 중위소득은 20%, 평균소득은 19% 증가했다. 전체 가구의 중위소득 증가율 19%, 평균소득 증가율 15%와 비교해 노인가구의 소득증가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특히, 중위소득 증가율은 소득이 가장 낮은 1분위 노인가구가 18%, 소득이 가장 높은 5분위 노인가구는 6%로 저소득 가구의 소득증가율이 높다. 이는 소득 하위 70%의 노인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의 확대가 노인빈곤 개선에 긍정적이었음을 가늠케 한다.

노인기준이 현재의 65세에서 70세로 확대될 경우,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기초연금의 수급권자 기준 또한 65세에서 70세로 조정될 수 있다. 우려가 현실이 된다면 65세에서 69세 사이의 기초연금 수령자 약 150만명(2016년 기준)이 수급권을 상실하게 된다. 기초연금 확대로 주춤해진 노인빈곤율이 다시 제어를 잃고 상승할 것이다.

노인돌봄서비스의 수급권자 범위도 조정될 수 있다. 노인기준을 70세로 높여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수급권자 범위를 축소한다면 65세에서 69세 사이의 장기요양등급 인정자 약 2만5000명(2015년 기준)은 장기요양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게 된다. 독거노인을 위한 노인돌봄기본서비스의 경우, 독거노인 32만명(2015년 기준)이 수급권 밖에 놓이게 된다. 수급권을 잃은 장기요양노인과 독거노인의 돌봄은 다시 가족의 몫으로 남게 된다. 노인돌봄으로 인한 가족 구성원의 경제활동 제약은 사회생산력을 약화시키고 가족으로부터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하는 노인은 삶의 질을 위협받게 된다.

노인기준 조정을 빌미로 한 노인복지제도의 수급권 축소는 저출산·고령화의 대책이라기엔 옹색하다. 앞에서 남고 뒤에서 밑지는 악수이다. 무엇보다 노인기준 재정립으로 에둘러진 노인복지제도 수급권 조정은 빈곤한 삶의 무게를 노인의 어깨에서 내려놓은 후에 고민해도 된다.

최혜지 서울여대 교수·참여연대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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