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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국회 연설에서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19세기 말 미국의 사상가 헨리 조지를 언급한 이후 때 아닌 헨리 조지 소동이 일어났다. 추미애 대표는 한국의 토지,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 문제가 심각하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헨리 조지가 주장했던 지대세 혹은 토지가치세의 아이디어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나 한국의 정당 대표가 국회 연설에서 헨리 조지를 입에 올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한다. 한국의 망국병인 토지투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유세 강화가 필요하다는 추미애 대표의 주장은 지극히 타당하며, 정곡을 찌른 것이므로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망국병이 고황에 이르도록 정치인과 경제관료들은 변죽만 울리고 있었는데 모처럼 핵심을 짚은 정치인이 등장했으니 이제 서민들의 얼굴에도 햇살이 비치려는가.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이 연설이 나가자마자 조선일보에서는 추미애 대표와 헨리 조지를 싸잡아 공격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그전부터 이미 토지 보유세를 반대하고 있었다. 이들 한국을 대표하는 보수 언론은 사설과 칼럼에서 학자와 여론을 등장시켜 보유세 강화에 어깃장을 놓고 있는데, 그 논리가 지극히 허약하고 사실에 바탕을 두지 않은 비판이라 마치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를 보는 것 같다. 과연 헨리 조지의 저서 <진보와 빈곤>을 읽어봤는지 의심스럽다.

이들 보수 언론의 헨리 조지 공격은 하나부터 열까지 오해와 왜곡으로 가득 차 있다. 헨리 조지를 가리켜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반하는 인물로 묘사하는데, 이것은 백을 흑이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헨리 조지야말로 모든 독점과 불로소득에 반대했던 친자본주의, 친시장경제 사상가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친자본주의, 친시장경제의 챔피언을 꼽으라면 단연 미국 시카고대학의 밀턴 프리드먼 교수다. 이 사람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고, 그의 제자들이 수도 없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으니 시장경제를 논하는 데 밀턴 프리드먼은 최고 권위자라고 불러도 좋다. 프리드먼은 이렇게 말했다. “오래전 헨리 조지가 주장했던 토지가치세는 이 세상 세금 중 가장 덜 나쁜 세금(the least bad tax)이다.” 원체 세금을 싫어하는 시장만능주의자인 프리드먼이 이렇게 말했다는 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 세상 세금 중 가장 우수한 세금이란 뜻이다. 효율에서 보나, 공평에서 보나 토지가치세를 따라올 세금은 없다. 토지 보유세의 우수성을 증언해준 경제학자가 바로 보수 학자들과 보수 언론이 총애하는 밀턴 프리드먼인데, 한국에서 꽤나 발언권을 행사하는 수많은 그의 아류들은 기를 쓰고 토지 보유세를 반대한다.

또 조선일보에서 인용하는 어떤 사람은 헨리 조지를 가리켜 토지 국유화 혹은 토지 몰수를 주장한 것으로 말하는데, 억지라도 이런 억지가 없다. 헨리 조지가 토지가치세를 주장한 이유는 자본주의가 사유재산에 바탕을 두고 있고, 토지 사유에서 발생하는 불평등과 부조리가 심각하지만 이미 오랜 세월 확립된 토지 사유제를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토지 국유화나 토지 몰수라는 과격한 방법 대신 토지가치세라는 점진적이고 합법적이며 친시장적인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토지가치세를 제대로 매기기만 하면 여러 가지 좋은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토지,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이 대부분 사라지므로 그 자체 불평등을 대폭 축소시킬 것이고, 더 이상 부동산 투기에서 이득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생산적 활동으로 눈을 돌려 소득증대, 경제성장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부동산 투기를 해봤자 제로섬 게임에 불과하며, 국민소득은 한 푼도 늘어나지 않는다. 한쪽에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폭리를 취한 부동산 부자들이 있다면 다른 쪽에는 집세 인상으로 고통받는 집 없는 서민이 있다. 평생 제조업해봤자 남는 건 없고, 땅값 오른 이득밖엔 없다는 말이 유행어가 돼버렸다. 나라가 이래서야 되겠는가. 비생산적 부동산 투기 게임 때문에 불평등만 커지고, 성장을 저해해온 것이 해방 후 한국의 역사다. 그래서 부동산 투기는 한국의 망국병이다.

이제는 망국병을 치료하고 나라의 틀을 바꾸어야 한다. 부동산 투기를 종식시켜 불로소득의 근원을 차단하고, 국민에게 생산적 활동을 권유하는 최선의 방안이 바로 헨리 조지가 오래전 주장했던 토지 보유세다. 한국을 토건국가로 만든 소위 토건족들은 ‘세금폭탄’ 등 말도 안되는 온갖 이유를 갖다 붙여 종부세를 반대하더니 기어코 위헌 판결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으나 먼 훗날 역사는 보유세가 정당했음을 선언할 것이다. 헨리 조지의 사상이 실현돼야 할 나라가 있다면 바로 지금의 한국이다. 오래전 사상이라고 과소평가하지 마라. 진리 중에는 만고불변의 진리라는 게 있다.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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