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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1일, 여느 해처럼 방송이 해맞이를 보여주며 새해의 시작을 알렸다. 사람들은 서울 남산이나 북한산에서 혹은 한라산과 동해의 해변에서 새해 소망을 기원했다. 서민들이 절실히 바라는 새해 소망은 무엇일까?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짐작할 듯싶다. 가족 가운데 아무도 아프지 않고, 가장은 일자리를 계속 갖고, 자녀 취업하고, 내 집 한 칸 갖는 소박한 꿈일 것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북한산에 올랐던 문재인 대통령의 새해 소원은 아마도 신년사에서 올해 국정 목표로 밝힌 “국민의 삶의 질 개선”일 게다.

우리는 서민이나 대통령의 소원이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건강 및 주거복지, 일자리 창출과 가계안정 등은 삶의 질을 높여줄 기본 조건이지만 넘어야 할 과제들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오래 쌓인 절망이 해가 바뀐다고 절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서민들은 오늘보다는 내일이 조금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품고 새해를 맞이한다. 그래서 고은 시인은 ‘새해 두어 마디 말씀’이라는 시에서 그랬다. “새해 왔다고…하루아침에 찬란한 세상에 닿기야 하리오?…새해도…궂은일 못된 일 거푸 있을 터이고…그 가운데 안 변하는 심지 하나 들어 있어서 그 슬기 심지로…마침내 우리 세상 훤히 훤히 밝아”라고.

서민의 희망을 열어줄 ‘슬기 심지’는 무엇일까? 최근 일부 정치권과 언론에서 ‘정치보복’, ‘피로감’, ‘미래’가 자주 거론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진행하는 적폐청산의 본질은 정치보복이고, 이를 지속하는 건 국민에게 피로감만 안겨주며, 미래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한다는 주장이다. 과연 ‘적폐청산’은 세상을 훤히 훤히 밝히려는 국민의 ‘슬기 심지’를 가로막는 장애물일까? 지난날 기득권 세력이 변화에 저항하며 개혁 지향 정부를 공격하던 ‘개혁 피로감’ 프레임이 떠오르는 건 우연이 아니다. 구태가 ‘미래’의 이름으로 옹호되고, 변화는 ‘무질서’가 되어, 결국 개혁은 ‘쓸데없는 짓’으로 호도되었다. 기막힌 의미(意味)의 전도(顚倒)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지난 경험에서 현재 대면하는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함이다. 현재는 과거의 축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 문제를 개혁할 수 있는 원인 파악과 문제 해결의 힘은 올바른 역사인식에서 출발한다. 반복되는 개혁과제라면 더욱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중요하다.

과거 이른바 ‘민주정부’의 안보정책은 나름대로 일관성을 유지했고, 대북정책은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의 견제에도 일정한 성과를 도출했다. 그러나 사회경제 분야는 성과를 얻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야박한 평가라고 타박하더라도 사실이 그렇다. 지금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재벌개혁이나 서민 삶의 질 개선 등 사회경제 분야의 많은 개혁과제들은 정도 차이는 있지만, 김대중·노무현 정부에도 부여된 과제였다. 그러나 두 정권을 거치는 동안 재벌의 성은 더 강고해졌고, 재벌 위의 재벌이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비정규직은 제도화되어 양산되었다. 그 결과 서민들 삶의 질은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

당시 사회경제 개혁정책들이 좌초한 이유를 꼽자면 여러 가지다. 그러나 그 가운데 핵심은 개혁을 반대하는 소수 기득권 세력의 저항과 함께 개혁 주체들의 빈약한 철학이었다. 그로 인해 정권의 정책 기조가 수시로 바뀌고 정책 내용이 목표를 잃고 변질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개혁이 성공하여 촛불 민심이 요구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슬기 심지’는 무엇일까? 넓은 안목으로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개혁은 법과 제도에 의해 추진되기에 기득권의 양보를 이끌어내야 하고, 개혁을 바라는 집단에는 새 정부에 시간을 주는 인내가 요구된다. 개혁 주체 세력에게는 국민을 이리저리 나누지 않고 모두를 끌어안는 포용과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보여주는 확고한 비전, 그리고 적절한 실천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진취적 시대정신에 부합한다고 개혁의 방향과 실행이 다 바른 건 아니다. 소리만 요란하고 실질 성과가 미약하면 개혁은 좌초하기 십상이다. 정책의 선후를 잘 가늠하고 촘촘하게 설계하여 국민이 성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고 뜸만 들여서는 밥이 되지 않는다. 슬슬 문재인 정부가 ‘결정 장애’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정권의 주체세력이 지난 노무현 정부의 개혁 실패 트라우마가 하도 강해 개혁을 위한 의사결정이 느린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너무 빠른 것도 문제지만 일정한 속도 유지도 중요하다. 그래서 폭넓고 튼튼한 개혁 주체세력의 역량구축이 필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더불어 성장하고 함께 나눈다’는 가치의 실현이다. 역사적으로 한 시대를 이끈 국가들의 사회 작동원리는 예외 없이 공동체 구성원들이 더불어 성장하고 함께 나눈다는 가치였다. 그리고 번영했던 국가를 멸망과 쇠퇴로 이끈 배경은 ‘나만의 홀로 성장’이란 뒤틀린 가치가 사회 작동원리였던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하고, 2012년 다보스포럼에서 실패했다고 평가받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도 ‘자유경쟁’을 사회 작동원리로 내세웠지만, 실제로 작동한 건 나홀로만의 성장이었다. 나홀로만의 성장은 필연적으로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사회는 구심력보다 원심력이 커져서 공동체 사회는 붕괴한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의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책 이름이 무엇이든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노력한 만큼 더불어 성장하고 함께 나누어서 삶의 질이 지속적으로 향상되는 사회 작동원리를 토대로 해야 한다. 국정의 모든 영역에서 끊임없이 국민의 삶에 맞추는 개혁 정책의 각론을 개발하고 실행할 역량을 구축하여, 더불어 성장하고 함께 나눈다는 동반성장의 가치가 사회 작동원리로 구현되기를 주문한다.

<정운찬 |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한국야구위원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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