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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사건으로 재판받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가정보원으로부터 특수활동비 36억여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등)로 추가 기소됐다. 박 전 대통령이 상납을 지시하면 국정원이 갖다바치고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돈 관리에 개입했다는 게 검찰이 파악한 사건의 얼개다. 박 전 대통령은 이 돈을 의상비와 ‘비선 치료’ 비용, ‘문고리 3인방’ 격려금 등으로 쓴 것으로 조사됐다. 국가안보에 사용하라고 지출증빙 제출의무까지 면해준 예산을 착복한 것만으로도 중범죄인데, 그 돈을 업무와 무관한 사적 용도에 썼다니 기막힐 따름이다.

검찰 수사 결과를 보면, 박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13년 5월부터 국회의 탄핵소추 석 달 전인 2016년 9월까지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에게서 총 35억원을 상납받았다고 한다. 이원종 전 대통령비서실장을 통해 받은 1억5000만원까지 합치면 뇌물액수는 총 36억5000만원에 이른다. 이 중 3억6500만원은 최순실씨 등과의 연락을 위해 사용한 차명 휴대전화 51대 구입 및 통신요금, 기치료·운동치료·주사 비용, 서울 삼성동 자택 관리 비용 등으로 쓰였다. 9억7600만원은 이재만·안봉근·정호성 전 비서관 등 최측근들에게 휴가비·명절비 명목으로 흘러갔다. 이들에게 돈을 건네는 과정에 최순실씨가 개입한 정황을 보여주는 최씨의 자필 메모도 발견됐다. 나머지 돈 가운데 일부는 최씨가 운영하던 ‘박근혜 전용’ 의상실 운영비로 전달됐다고 한다.

국정원 특활비 사건이 터졌을 때부터 이런 사태를 예상 못한 것은 아니었다. 국정농단 수사·재판 과정에서 이미 박 전 대통령이 권력을 사유화한 흔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갖가지 주사 비용에서 삼성동 집의 보일러 기름값까지 아우르는 ‘깨알 같은’ 사용내역을 접하고 보니 다시 한번 충격을 금할 수 없다. 국가와 개인을 구분하지 못한 지도자의 후과가 추하고 참담하다.

박 전 대통령이 추가 기소된 날, 친박계 핵심인사인 자유한국당 최경환 의원도 국정원으로부터 특활비 1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최 의원은 “돈 받은 게 사실이라면 동대구역에서 할복하겠다”며 의혹을 부인해왔지만 법원은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검찰은 국정원 특활비가 박 전 대통령과 최 의원 외에 다른 친박계 실세 의원·장관들에게 전달됐는지도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특활비를 사적으로 착복한 경우 모두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다. 관행으로 치부하고 어물쩍 넘어간다면 ‘예산 농단’은 뿌리 뽑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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