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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대한민국에서 근래 보기 드문 매우 독특한 현상이 하나 나타나고 있다. 그건 바로 반미 데모나 반미 여론이 매우 약화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진보계열의 움직임이 그러하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11월 방한 기간 중 반미 시위가 있었고 아직도 반미 여론이 존재하나 그의 자국중심적 발언이나 정책, 그리고 우익적인 가치관과 철학을 보건대 우리 진보세력이 이 정도로 조용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반면 미국 내부나 서유럽에서는 반트럼프 여론이 심각하고, 선진국 중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나라는 일본 정도밖에 없다.

왜 이런 현상이 대한민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이 주로 국내 문제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또 미국이 한국에 노골적이고 강압적으로 뭘 요구하기 이전에 우리 정부가 선제적으로 대미 외교를 잘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트럼프 대통령은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정치인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다른 어떤 대통령에 비해 아직까지 진보세력의 비난을 가장 덜 받는 미국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되는 또 하나의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상당수 진보세력이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과 비핵화 정책을 역시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을 압박하고 제재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과 비핵화 정책은 기존의 한국 보수세력이 주장해 온 정책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고, 오히려 과거 어떤 미국 정부보다도 더 한국 보수세력의 주장에 가까운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왜 상당수 진보세력이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지하고, 반미 데모나 시위를 벌이지 않는 것일까? 미국의 대북 압박이 정권 생존에 위협을 가해 북한이 핵을 가지려 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진보세력이 왜 이제는 대북 압박만이 비핵화의 길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일까? 정말 급반전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한 필자의 가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들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즉 대북정책이 무엇이냐보다도 누가 대북정책을 추진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전형적인 정체성 정치이다. 현재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한·미 공조에 방점을 찍고 있고, 기조에 있어서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권교체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이전 보수 정부와도 큰 차이가 없다. 물론 그 배경에는 한국이 한·미 공조노선에서 이탈하면 미국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있고, 그 사실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정부 지지세력은 이렇게 애를 쓰는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지 않을 수 없으며 전쟁방지를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즉 비판적 미국 지지다.

둘째, 가설은 북한 김정은 정권에 대한 혐오와 죄와 벌을 기준으로 하는 징벌적 사고이다. 사실 보수세력은 두말할 것도 없고, 진보세력의 입장에서 볼 때도 북한의 왕조정치, 인권유린, 그리고 반인륜적인 핵개발, 갓 30대의 독재자 등이 좋게 받아들여질 리 만무하다. 진보의 가치관에 다 역행하는 일이다. 그리고 국제사회의 규범을 어기고 일방적으로 독주하는 북한에 대해 징벌을 가해야 하는 것도 진보적인 가치관에 부합한다. 이 점에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지지할 만한 정책이다.

아마도 해답은 위 두 개 가설의 교집합쯤에 있을 것으로 생각되나 이러한 대북정책과 세계관은 ‘안보 진보세력’이라는 묘한 정치세력의 탄생을 예고하게 된다. 즉 안보정책은 기존 ‘안보 보수세력’과 크게 다르지 않고 경제정책은 진보적으로 가는 정치세력이다.

그들의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조사해 보아야겠지만 주로 젊은층에 포진한 이 정치세력은 그 세계관으로 인하여 북한과의 협상이나 대화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고, 북한에 유화적인 중국에 대해서도 매우 부정적이다. 잘못하면 총체적으로 반북, 반중, 반러라는 매우 냉전적인 세계관으로 흐를 위험도 있다. 더구나 압박만으로는 북핵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기존 진보의 사고와는 달리 최대 압박과 항복으로 비핵화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견지하여 냉전적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킬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현실이다. 압박으로 인하여 전운이 감돌고 동북아에 한·미·중·일·북의 군비경쟁이 시작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핵은 그대로 존재할 때 이들은 더욱더 강한 압박을 요구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타개책을 지지할 것인가?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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