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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논란이 아직도 뜨겁다. 최저임금 인상이 저임금 노동자들의 소득증가로 이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반발이 크다. 고용을 감축하거나 상여금을 최저임금에 포함하는 등의 방식으로 부담을 회피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은 단순히 임금을 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지속가능한 한국 사회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혼란을 조기에 수습하고 연착륙시켜야 한다.

현대적 의미의 최저임금제도는 1894년 뉴질랜드에서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생활 보장을 위한 입법으로 시작됐다. 영연방 중심 국가였던 영국도 1909년 최저임금법을 채택하였다. 처칠 총리는 의회에서 이렇게 연설했다. “특정 계급의 국민들이 최저생계 유지에 필요한 비용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다면 이것은 국가적 악재”라고.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우리나라는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에 최저임금제의 실시 근거를 두었으나 당시 어려운 경제상황으로 실제 운용되지는 않았다. 최저임금제가 최저임금법으로 보장되기 시작한 1988년 당시 462.5원이었던 최저임금은 지난 30년간 연평균 9.65%의 인상률을 보이며 오늘에 이르렀다. 2018년 최저임금은 7530원으로 전년 대비 16.4% 올랐다. 17년 만의 최고 인상률이다. 문재인 정부의 의지대로 2020년까지 1만원이 되려면 매년 15.7% 이상 올려야 한다. ‘급격’한 인상이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대한 주요 반대논리는 영세한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경영상의 부담으로 직결될 수 있으며 또한 저임금 계층의 일자리를 감소시켜 그들의 생존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상속도를 조절하거나 업종·지역별 차등화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노동계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최저임금이 곧 노동자가 받을 수 있는 ‘최대임금’인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또한 최저임금이 사실상 ‘기준임금’으로 활용되는 상황에서 업종·지역별로 달리 정하면 노동자 간 불공정성 문제를 낳는다고 주장한다.

중소기업과 노동계 모두 타당하고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중소기업·소상공인·노동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지속가능한 한국 사회 구축을 위해 최저임금 인상 정책은 속도 조절을 통해서라도 성공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은 헌법에 보장된 인간으로서 존엄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경제조건을 확보해 준다. 인간다운 최소한의 삶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공동체에 애정을 가질 구성원은 없을 것이다. 사회안전망이 아직 취약한 우리나라 현실에서 계속되는 저임금은 근로자들에게 가혹한 일이다. 2012년부터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도입하기 시작한 ‘생활임금’은 최저임금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한다는 취지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최저임금 인상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 요구의 반영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연착륙되어야 할 또 다른 이유는 경제구조 관점에서 몇 가지 긍정적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먼저 소득양극화 완화다. 2016년 기준 소비자물가지수를 반영한 우리나라의 실질최저임금은 5.8달러로 독일(10.3달러), 미국(7.2달러), 일본(7.4달러)보다 훨씬 낮다. 최저임금 인상은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려 소득의 양극화를 완화하는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2000년대 이후 미국·유럽에서 시행한 빈곤 퇴치 및 사회통합 정책 가운데 가장 효과적인 것이 최저임금 인상이었다. 그리고 최저임금 인상은 소비성향이 높은 계층의 임금소득 증가를 통해 내수를 자극하여 중소기업은 물론 경제 전체의 성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연구결과도 많다.

인권보장과 구조적 관점에서 최저임금 인상의 연착륙 방안은 무엇인가? 먼저 최저임금 1만원 달성 목표연도를 2020년에서 예를 들면 2022년으로 조정할 것을 제안한다. 목표연도를 없애고 최저임금을 평균임금의 일정 비율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왜냐하면 현재 우리가 겪는 저성장 속에서 최저임금을 급격히 인상하기에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어려움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또한 목표달성 위주의 경제정책은 성공하기도 힘들고 부작용이 너무 클 수도 있다.

그리고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비용 상승을 전가하는 불공정 거래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원청 대기업이 하청 중소기업에 비용 상승분을 전가하면 하청업체는 대기업의 납품단가 인하 압박을 저임금으로 벌충했다.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 관행이 없어지지 않는 한, 최저임금을 인상할 때 중소기업은 납품단가를 맞추기 위해 고용을 줄이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 감소를 최소화하면서 임금의 정상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대·중소기업 간 공정거래의 정착으로 중소기업이 창출한 성과는 중소기업에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더불어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을 설비투자로 유도하여 대기업 일자리뿐만 아니라 하청 중소기업의 일자리가 창출되어야 한다. 2017년 상장사 사내유보금은 860조원, 이 중 10대그룹 사내유보금은 515조원으로 해마다 증가해왔다. 대기업이 설비투자 확대 없이 사내유보금만 계속 증가하면 대기업에 쌓여 있는 자금이 전체 근로자의 88% 이상이 일하고 있는 중소기업 부문으로 흘러들어가지 못하면서 최저임금 인상은 결국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희생만 가져온다. 끝으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저임금 근로자의 소득 증가가 소비 증가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복지확대도 수반되어야 한다. 미래 삶을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사회시스템에서 임금상승분은 가계저축으로 축적될 뿐 소비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간의 정부 대처는 아쉬움이 컸다. 급격한 인상으로 인한 부작용을 충분히 인지했을 법한데도 세심한 대책이 부족했다. 정부가 내놓은 일자리 안정자금은 당장 피해를 보는 영세사업주의 형편을 고려하지 못해 외면받고 있다. 강력한 재정·세제 지원뿐만 아니라 대·중소기업 간 공정 거래, 터무니없이 오르는 임대료 대책, 노동시장 개선, 산업구조 조정 등의 대책도 함께 나왔어야 한다. 정책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구조적 측면을 함께 고려했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종합적인 최저임금 인상의 연착륙 정책을 기대해본다.

<정운찬 |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한국야구위원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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