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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동자 싸움의 현장에 갈 적마다 마치 온몸이 불붙는 화살처럼 소리소리 달려가곤 한다. 그러다가도 남몰래 흥얼대는 노래가 하나 있다. 얼마 앞서는 쌍용차 노동자 김득중이 “선생님, 이참엔 굶어죽는 싸움으로 결판을 내고야 말겠습니다”라며 돌아간 뒤에도 나는 남몰래 노래를 불렀다. 무슨 노래일까. ‘섬집아기’라는 애들 노래지만 거기에 얽힌 이야기는 이렇다.

내 나이 열여덟, 전쟁이 한창일 적 전선에서 돌아가신 형님의 유해라도 찾겠다며 부산에서 영등포로 가는 기차에 몰래 타긴 했는데 밀양인가부터 기차가 멎고는 가질 않는 거라. 몇 날을 굶어서 배는 고프지 눈보라는 치지 꽁꽁 얼붙던 그때 그 숨죽은 그 역 앞마당.

하지만 그 침묵을 깨는 게 있었다. 달걀장수 아줌마가 어린 애를 포대기에 싸서 눈더미 위에 올려놓고 가 그 어린 것이 우는 소리라. 하도 안타까워 뛰어내려 달래주고 있는데 그 달걀장수 아줌마가 고맙다며 달걀 하나를 주는 게 아닌가. 너무나 감격해 막 입에 넣으려고 하는데 그 어린 꼬마가 아 앙~, 나도 모르게 달걀을 뜯어주니 낼름, 또 주어도 또 낼름, 마침내 다 빼앗기고 나자 내 정신이 돌아오는데 아이구야 고리눈으로 돌아오는 게 아닌가. 그래서 고것이 예쁘기도 밉기도 한데 마침 꽥~ 그 어린 것이 우는데도 나는 기차를 타고 떠나왔지만 그때부터다. 내 마음엔 탈(병)이 하나 들고 말았다. ‘네 이놈 겉으로는 착한 척하면서 거짓부리지 마라 이놈’ 그런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던 어느 날이다. 아내가 부엌에서 흥얼거리는 노래가 들려왔다. “여보, 그 노래 괜찮은데 다시 한 번 불러 봐.” 그래서 익힌 노래가 바로 ‘섬집아기’. 이때부터다. 내 인품이 모자라다 싶을 적엔 늘 그 노래를 부르곤 하는데 문화활동가 신유아의 전화다. 콜트콜텍 노동자 싸움에 함께하시자고.

콜트콜텍 노조원 이인근, 김경봉, 임재춘씨(왼쪽부터)가 2017년 12월 26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옆 천막농성장 앞에 서 있다./정지윤기자 콜트·콜텍 해고노동자 이인근, 김경봉, 임재춘씨(왼쪽부터)가 서울 광화문 천막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부당해고에 맞서 이들의 싸움은 내년 1월12일이면 4000일이 된다. 국내 최장기 투쟁이다. 정지윤 기자

잘 아시겠지만 콜트콜텍의 자본가가 투자한 자본금은 오매 200만원. 하지만 노동자들이 피땀으로 일궈 몇 해 만에 재계 120위의 부자가 되었다. 아무튼 같이 살자고 노조가 이마를 맞대고 있는데 갑자기 회사를 통째로 인도와 중국으로 빼돌렸으니 그건 무엇일까.

첫째, 역사범죄다. 무슨 말이냐. 우리 인류는 지난 3000년 동안 경제의 참 알기(주체)는 자본이 아니라 노동이라는 걸 깨우쳤다. 그게 있기에 우리 인류는 영광에 빛나는 건데 콜트콜텍 사장은 그 깨우침을 주관적으로 깨트렸으니 그건 어절씨구 역사 알기(주체)의 말살범죄라, 요만큼도 용서해서는 안 된다.

둘째, 공장이란 물건만 만드는 데가 아니다. 노동자의 살티(목숨)의 텃밭이다. 그것을 강제 폐쇄했다는 것은 무엇일까. 노동자의 목숨을 공개적으로 죽인 만행일 뿐만 아니라 사람과 그 사회를 짓이긴 침략이라, 어찌해야 할까. 암, 민주정신으로 응징해야 한다.

셋째, 인류문명이란 무엇인가. 예술의 발전이다. 그것은 또 어디서 오는가. 아무렴 노동에서 온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 바로 콜트콜텍인데 그 공장을 죽이다니, 그것은 곧 인류문명인 예술을 죽이는 반문명이라, 누가 나서야 할까. 바로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나서 싸운 지가 어느덧 오늘로 4090일, 그것은 피눈물의 싸움이었지만 거대한 먹괭이(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듯 아직도 실마리가 보이질 않는다.

하지만 요만큼도 머뭇대선 안 된다. 이 싸움에서 밀리면 역사, 그 나아감의 심정적 패배라, 나 같은 사람은 그저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 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라는 노래로 나설 터지만 우리 시민들은 길이 없으면 길을 찾아가고 그래도 길이 없으면 길을 내자는 ‘아리아리’로 나서자. 이제는 세상을 바닥에서부터 발칵 뒤집는 노래 아리아리로 저 끔찍한 반생명과 맞붙는 싸움에서부터 이겨야 하나니, 벗이여 눈물겨운 벗이여.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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