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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오전 7시였다. 32일간 단식 끝에 쌍용차 해고자 김득중이 병원으로 실려갔다. 그는 2015년 8월에도 45일의 단식 끝에 병원으로 이송됐다. 쌍용차 정리해고 싸움 10년 동안 단식만 이번이 네 번째다. 그는 2016년 겨울엔 광화문 캠핑촌에서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봄이 올 무렵까지 텐트 생활을 했다. 우린 ‘촌민’으로 매일 만나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곤 했다.

쌍용차 싸움 10년 동안 스물아홉 명의 해고자와 그 가족들이 죽어갔다. 어떤 이는 목을 맸고, 어떤 이는 탄불을 피웠다. 어떤 아내는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아파트 난간으로 향했다. 그 피눈물들을 어떻게 눈뜨고 말할 수 있을까. 고공농성도 몇 차례였다. 2012년 가을 끝자락 한상균, 문기주, 복기성이 15만V의 전기가 흐르는 송전철탑에 올라 이듬해 여름 초입까지 171일 동안 허공에 떠 있었다. 베니어합판 몇 개 놓은 위험천만한 고공농성. 2014년 12월13일에는 김정욱과 이창근이 공장 안 70m 굴뚝에 올라가 입김도 얼어붙던 겨울을 나고 101일 만인 이듬해 봄에 내려왔다. 2012년부터 1년 반 동안은 서울 대한문 앞에 스물두 명의 얼굴 없는 영정을 모시고 분향소를 지켜야 했다. 기름을 껴안고서라도 분향소를 지키겠다던 김정우가 끝내 구속된 해다. 그는 박근혜가 선거용 사진을 찍기 위해 전태일 흉상 앞에 서는 것을 온몸을 던져 막았다. 괘씸죄였다.

쌍용차 해고자들만이 걸어온 통한의 길이 아니다. 2009년 지금은 구속된 이명박이 테이저건으로 무장한 테러진압부대를 보냈던 77일간의 점거파업 현장부터 수많은 시민들이 그들과 함께 희망고문의 길을 걸어왔다. 쌍용차만의 투쟁이 아니었다. ‘정리해고’라는 사회적 광우병에 대한 2200만 노동자 가족들과 소수 자본가들 간의 대리전이었다. 정리해고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공방의 격전장이었고, 노사정 모두 물러설 수 없는 고지전이었다. ‘해고는 살인이다’를 둘러싼 사회적 진실규명 투쟁이기도 했다.

2012년, 박근혜도 당선되면 맨 먼저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해 국정조사에 나서겠다고 했다. 2015년, 의원 시절 문재인 대통령은 현재 구속되어 있는 한상균 등이 있던 철탑까지 올라와 문제 해결을 약속했다. 2015년 총선 당시 김득중이 노동자 후보로 평택시 국회의원에 입후보했을 때 후원회장은 조국 민정수석이었다. 현재 구속된 한상균과 77일간의 파업 당시 함께 구속되어 2년을 살다 나온 김혁의 삶과 우정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내 안의 보루> 출간 도우미를 조국씨와 함께 했던 따뜻한 기억도 난다. 2014년 고법에서 승소한 ‘회계 조작에 따른 부당해고’가 그해 11월13일 대법원에서 통상적으로 인정되기만 했어도 모든 문제가 끝날 일이었다. 2015년 ‘더 쉬운 해고, 더 많은 비정규직, 더 적은 임금’ 등을 목표로 총체적인 노동법 개악을 준비하던 박근혜 정부의 정치공작과 외압은 없었을까. 2014년 8월 만들어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이 비선으로 관리했다는 ‘노동시장개혁상황실’은 아무런 역할이 없었을까. 고법 판결 후 마힌드라사 자문으로 나선 김앤장의 힘이었을까. 진실은 언제 밝혀지고, 불의는 언제 바로잡히는 것일까.

감옥에 갇힌 한상균이 김득중을 대신해 옥중 단식을 하고 있다. 2011년 부산 한진중공업에서는 쌍용차와 같은 죽음이 일어나면 안된다고 희망버스 차장이 되셨다가 얼마 전 끝내 벌금을 선고받은 문정현 신부님이 쌍용차 김득중의 단식에 연대하기 위해 스스로 구치소 노역장으로 들어가시기도 했다.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가 모두 김득중이고, 한상균이고, 윤충렬이고, 김정욱이라고 나서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쌍용차이고, 스물아홉 명의 얼굴 없는 죽음이고, 그 분노라고 나서야 하지 않을까. 박근혜도 이명박도 없는데 이렇게 조용하고 싸늘한 사회가 조금은 이상하지 않느냐고 다시 광장으로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4월7일 오후 3시, 평택역 앞에서 피눈물의 쌍용차 자동차들을 ‘워낭소리’처럼 끌고 평택 쌍용차 공장 앞까지 김득중의 빈자리를 메우러 함께 간다. 다음엔 무엇을 들고, 어디로 가야 하나. 싸늘한 마음에 조금씩 불길이 일고 있다.

<송경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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