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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아마도 수험생들은 자신이 따게 될 대학 간판이 앞으로의 인생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것이란 점을 이미 누구 못지않게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결전’의 순간 앞에 그들이 느끼고 있을 중압감을 헤아려 보다 문득 지난 4월 대학 입시개편안을 주제로 열린 한 방송사의 토론 프로그램에서 인상 깊게 남았던 대화의 한 토막이 떠올랐다.

입시제도에는 한 사회의 철학과 지향점이 응축돼 있기에, 입시를 둘러싼 논쟁은 필연적이게도 입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 토론에서 수시와 정시를 놓고 설전을 벌이던 패널들도 결국 마지막에는 ‘인생 역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로 이야기를 확장해 갔다.

수시를 옹호하는 쪽 패널로 나온 한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의 대역전은 고1 때 1~2등급을 못 받다가 나중에 수능 잘 봐서 상위 11개 대학에 합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는 인생 역전은 5~6등급 받고 전문대나 (중하위권) 대학에 가서도 공부를 새롭게 해서 원하는 삶을 살 때, 그것이 인생 역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답률 2%짜리 문제를 맞히기 위해 모두가 올인해야 하는 현실이 바람직한 현상인지 다시 묻고 싶습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왕성하게 공유되고 있는 ‘대충 살자’ 시리즈

그러자 정시 확대를 주장하는 쪽의 패널로 나온 대학교수가 교사의 ‘이상주의’를 질타하며 이렇게 반박했다. “인생의 역전은요, 고등학교 시기에도 가능해야 합니다. 대학 가서도 가능해야 하고, 졸업해서도 가능해야 합니다. 저는 선생님 같은 사고가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말 걱정됩니다. (학생 여러분) 항상 도전하시고요, 꿈을 잃지 마시고요,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십시오. 이 사회가 그런 길을 드릴 겁니다.”

두 패널의 대화는 당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꽤 회자되었는데, 그것은 이들의 대화 내용이 단순히 수시와 정시의 ‘황금비율’ 논쟁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점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후자의 주장은 한마디로 “노오력하라, 안되면 더 노오오력하라”로 요약된다. 그는 대학에 가고 졸업을 해도 꿈을 잃지 않고 항상 도전하면 매 순간 ‘인생 역전’이 가능하다고 하면서도, “전문대에 가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 인생 역전”이라는 교사의 사고가 학생들에게 미칠 영향을 걱정한다. 그러나 ‘노오력지상주의’는 언제나 철저히 승자의 언어로만 쓰여진다는 데 문제가 있다. 열심히 노력하면 상위 11개 대학에 합격해 ‘인생 역전’을 이뤄낼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들 대학의 모집정원이 전체의 11%에 불과하다는 점은 굳이 언급하지 않는다. 열에 아홉은 아무리 노력해도 ‘인생 역전’에 기어코 실패하고야 만다는 얘기다.

반면 대학 간판 없이도 모두가 각자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전자의 주장은 너무나 맞는 말이지만,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것만큼이나 공허하다. 상위 11개 대학을 나와도 예전처럼 좋은 직장을 구하기 어려워졌다며 일각에서는 ‘학벌붕괴’라고 호들갑을 떠는 상황이니 학벌의 피라미드 아래에서 펼쳐지는 지옥도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원하는 삶’이 무엇이 됐든 그 기본 전제는 안정적으로 먹고살 수 있는 삶이어야 한다. 이렇다 할 대학 간판이 없는 자들에게 “유일한 인생 역전 기회는 (정답률 2%짜리 수능문제만큼이나 바늘구멍인)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는 것뿐”이란 말이 좌우명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기성세대가 ‘인생 역전이란 무엇인가’를 놓고 탁상공론을 벌일 때, 아무리 ‘노오력’해도 사회가 길을 열어주지 않고 학벌에 비례하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자본 없이는 ‘원하는 삶’을 살기도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청년들은 ‘#대충 살자’에 열광한다. SNS상에서는 ‘대충 살자, 걷기 귀찮아서 미끄러져 내려가는 북극곰처럼’ ‘대충 살자, 평양에서 조는 최현우(마술사)처럼’ 같은 ‘대충 살자’ 시리즈가 유행이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란 책은 많은 이의 공감을 자아내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대충 살자’는 “열심히 해봤지만 안되더라”라는 좌절과 허탈 끝에 나온 일종의 자기방어 기제처럼 보인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자신의 삶을 피할 수 없다면 즐기려는 슬픈 카르페디엠이다. <복학왕의 사회학>을 쓴 최종렬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충 살자’는 소수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그래서 대다수가 패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청년들이 택한 저항의 한 방법”이라고 분석했다.

‘노오력’하라는 채찍질 아니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총체적 난국인 상황에서도 이상적인 당위밖에 얘기해주지 못했던 이 사회는 앞으로 이들에게 어떤 대안을 보여줄 수 있을까. 아무도 길을 열어주지 않는 현실 속에 놓여진 청년들, 그리고 몇 년 후 놓여지게 될 지금의 수험생들에게 벌써부터 미안한 마음이 든다.

<정유진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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