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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부터 지방자치단체장의 체육단체장 겸직 금지가 시행된다. 체육계의 자생력 강화가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동안 한국의 체육은, 국가의 막대한 지원과 일정한 통제 아래 발전해왔고, 특히 각 지자체의 산하에 편재되어 어렵사리 버텨왔다. 이제 겸직 금지로 인하여 그 ‘지원’과 ‘육성’이 축소되거나 최소한 다른 형태로 급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문제의 핵심은 체육계의 자생력 강화이고 이를 위한 방법 중 하나가 ‘스포츠기본법’의 제정이다. 그동안 한국의 체육정책은 ‘국민체육진흥법’에 근거하여 왔다. 1962년 제정된 ‘체육진흥법’에 뿌리를 두고 있는 ‘국민체육진흥법’은 1982년에, 88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대대적인 전면 개정을 하였고 그 이후 큰 변화 없이 유지되어 왔다. 일부 부분적인 개정이 있었고 이 법을 모법으로 하여 새로운 경향이나 산업을 반영하는 하위 법이 만들어지기도 했으나, 한 세대 전에 제정된 이 법의 목적과 정의는 그 이후 급변한 국내외 스포츠 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 법 1조의 ‘목적’에 표현되고 있는 단어들, 예컨대 ‘체력 증진, 건전한 정신, 명랑한 생활, 국위선양’ 등은 개발도상국에서 중진국으로 도약하던 무렵에 통용되던 발전주의 국가론의 이념을 반영하고 있는 바, 21세기 대한민국의 사회적, 문화적, 정서적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이 법의 2조에 명시된 ‘체육, 전문체육, 생활체육, 선수’ 등의 개념 정의 또한 오늘날 현대 스포츠의 다양성과 시민 저마다의 문화적 욕망을 충실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요컨대 기존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는 새로운 양상의 스포츠 경향들, 그와 관련된 선수와 팬과 미디어와 시설과 예산 등은 이 법의 바깥에서 배회할 수밖에 없게 된다. 

결과적으로 37년 전의 법 목적과 정의에 따른 제3조, 즉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진흥 육성 정책도 구조적인 문제를 장기화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예산을 틀어쥐고 있고 대한체육회와 각 산하 단체와 협회와 지도자들은 그 사슬의 각 위계 단위에 놓여 있어 자생력을 잃은 지 오래다. 이로써 권력과 체육의 복잡한 밀월관계가 형성되고, 하루아침에도 적과 동지가 뒤바뀌는 위계질서의 맨 아래에서는 폭력과 비리가 안개처럼 번져 있게 된 것이다. 당장 석 달 후부터 시행되는 겸직 금지 조치가 그나마 이 오랜 사슬을 끊을 수 있는 뜻밖의 단초가 되고 있어, 이에 ‘스포츠기본법’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 10여년 전부터 ‘기본법’ 제정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최근 몇 해 사이에는 구체적인 법령의 초안까지 제시되었다.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대한체육회에서도 지난 9월 발표한 자체 혁신안에 기본법 제정을 중요하게 담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국회 문광위의 일부 의원들도 이에 대한 의견과 방향을 적극적으로 내놓고 있다. 체육계의 현안들이 대개 ‘갈등적’이고 ‘대립적’으로 보이기 마련인데 당장 모든 이해당사자들의 미래가 걸린 ‘스포츠기본법’은 얼핏 보기에 ‘대동소이’한 관점을 가진 듯 보인다. 

그러나 그동안 여러 연구기관의 보고서나 일부 국회의원들이 마련한 초안을 보면 ‘스포츠기본법’이라는 새 용어를 썼으되 여전히 ‘국민’의 ‘체육’을 ‘진흥’하는 것에 집중된, 지극히 체육 내적인 시각에 머물러 있다. 사회 전반의 역동적인 변화와 국제적인 스포츠 문화 환경의 급변, 이에 따른 젊은 세대의 문화적 욕망과 바로 그 세대 문화에서 성장한 젊은 선수들의 내면을 반영하지 못하였다. 아니, 이에 대한 인식 자체가 전혀 없는 제안도 더러 있다. 그저 활기찬 신체 활동을 위해 ‘체육인’이 기능적으로 탑재되는 진흥책에 머물고 있다.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20세기 중엽의 체육 개념에 근거한 인간 신체에 대한 일방적 기준, 그에 따른 체육의 기능적 효과와 수단, 이를 증진하기 위한 물리적 진흥 제안이 여전하다. 물리적 진흥, 이 길로 계속 가면 또다시 정부 지원에 종속되어 한 줌의 자생력도 남지 않게 된다. 

‘스포츠기본법’에서 ‘기본’은 체육정책을 ‘진흥’하기 위한 기본이 아니라, 인간이 누려야 할 사회적, 문화적 권리라는 가치 측면에서 ‘기본’이다. 이 개념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 ‘기본’에 따르면 스포츠를 통한 인간의 존엄성 증진, 각종 차별 금지와 혐오 배제, 모든 생명의 존중과 그에 기반한 모든 사람의 여러 신체적 조건에 대한 가치와 배려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 특정하게 이념화된 ‘국민’이 아니라 보편 인권 차원의 ‘모든 사람’이 이 법에 해당되며 바로 그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환경과 조건에서 차별 없이 스포츠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이로써 개인의 행복과 사회 관계의 형성이 이뤄지고 나아가 지역사회 및 공동체의 민주적 발전에 스포츠가 기여하는 것이 ‘스포츠기본법’의 입법 취지여야 한다. 

자칫 ‘좋은 말 대잔치’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실은 이를 ‘기본’을 삼아야 거시적으로는 국제적인 스포츠 다양성에 적극 부응할 수 있고 일상적으로는 지역 공동체 활성화에 대한 체육인의 역할이 인정되는 것이다. 

스포츠를 인간의 기본권이 실현되는 장이며 다양한 사회적 요구와 문화적 욕망이 아름답게 펼쳐지는 장으로 인식해야 한다. 이럴 때 스포츠 기본권은 헌법상의 행복추구권, 평등권, 교육권, 건강권, 노동권 등과 동등한 수준에서 결합되어 심도 깊은 내면과 포괄적인 외연을 갖게 된다. 이 모든 권리와 스포츠권이 결합되어야 이른바 ‘체육인’들의 사회적 위상, 생활 안정, 일자리 창출 등도 연결된다. 

조만간 체육계와 국회 등에서 ‘스포츠기본권’이 활발히 논의될 것인 바, 일부 표현만 조금 바꾼 ‘체육진흥책’이 아니라, 체육인 전체의 미래를 걸고 과감히 사회 속으로 진입해 들어가 ‘모든 사람’들과 역동적으로 성장해가는 ‘스포츠기본법’을 제정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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