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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소리인가. 신국창생의 신화인가, 영웅탄생의 전설인가. 대한축구협회장과 대한체육회장 그리고 문교부 장관까지 지낸 민관식의 자전기록 중 일부다. 그는 회고한다. 1964년 도쿄올림픽을 현지에서 관람한 후 한국에도 선진적인 체육훈련센터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그리하여 귀국 후 이를 추진하던 중 “영겁의 어둠 속을 꿰뚫은 순백의 빛줄기” 같은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태릉, 태릉으로 가라!’

문제는 그곳이 문화유산이라는 점이다. 그것도 세계문화유산! 아, 물론 그때는 그런 생각조차 희박했다. 태·강릉의 문화적 가치? 그런 인식이 없던 시절이다. 창경궁이 유원지였던 시절이고 경복궁 내에 사령부 막사가 있었고 1963년에는 권역 내에 골프장, 식당, 주점, 잡화점 등을 지으려 했다. 그러니 서울 저 바깥의 태·강릉 한가운데에 체육훈련센터를 건립하겠다고 하는 것은 신묘한 우주의 기운을 느끼면 그만이었다. 그곳이 바로 태릉선수촌이다.

지금 태릉선수촌이 논란에 휩싸여 있다. 1966년에 완공되어 이른바 ‘국위선양 엘리트 체육’의 산실이었던 이곳이 태·강릉 복원 계획에 따라 2017년 완공 예정인 충북 진천으로 이전해야 하는 상황이다. 현 태릉선수촌은 8만평 정도이고 진천은 26만평 정도 된다. 문화재청은 세계유산 등재 당시 유네스코가 왕릉의 원형 보존을 권고한 만큼 선수촌 철거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한체육회는 문화재청에 근대문화유산 등록 신청을 했고 이미 서울시 지정 ‘서울 미래유산’ 목록이란 점을 보존의 근거로 내세운다.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기준이지만, 그러나 현실에서 그리고 국제적 기준에서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대응할 정도는 아니다.

세계문화유산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 아니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을 지정하는 것은, 일부의 오해와 달리, 관광산업 활성화나 지역경제 활성화 같은 맥락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일로 인해 ‘특정 국가의 문화유산이 아닌 인류 전체의 문화유산’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한 강력한 국제적 약속이다. 말하자면 이미 1960년대에 한국은 세계문화유산의 가치가 있는 곳을 체육센터로 훼손한 셈이다. 단 유네스코는 오랜 세월 동안 문화유산 권역 안팎에서 가난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원형 복원 때문에 갑자기 쫓겨나는 일을 막고, 최소한의 범위에서 공존하는 것을 권장할 뿐이다.

태릉선수촌 보존을 주장하는 체육계의 논리는 매우 허약하다. 이를테면 서울시의 ‘미래문화유산’ 지정은 대한민국 정부가 태릉선수촌 철거·이전 계획을 공식 문서로 국제기구에 제출한 사안에 비교할 때 힘이 약하다. 2013년 12월9일 국회에서 열렸던 토론회의 주장들도 빈곤한 주장들의 격렬한 성토였다.

태릉선수촌장을 지낸 새누리당 이에리사 의원과 여러 체육인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현재의 자리에 있을 때 경제효과가 있고 무엇보다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을 보장할 수 있으며 진천으로 옮기면 도시와의 고립감 때문에 경기 감각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현재 자리에서 국가대표들이 집중적으로 훈련은 했지만 학습권이 보장됐다는 말은 금시초문이다. 대표 선수들이 수십년 동안 선수촌이라는 ‘고립된 섬’에 갇혀 그 사회의 평균적인 교육, 문화, 일상, 친교 등으로부터 동떨어진 채 폐쇄적으로 훈련만 해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는 보존의 논리가 아니라 오히려 현행 엘리트 훈련 시스템에 대한 전면적 개혁의 근거가 될 뿐이다. 그나마 인정할 수 있으며 또한 확대할 만한 근거는, 태릉선수촌이 그 자체로 한국의 20세기를 압축한 또 하나의 문화적 장소라는 점이다. 근대문화유산의 역사적, 문화적, 장소적 가치, 즉 그 집합 기억의 가치를 살릴 필요가 있다.

물론 이것도 ‘태극전사의 땀이 밴’ 같은 수사로는 안된다. ‘귓전을 강하게 때리는 목소리, 태릉, 태릉으로 가라’, 이런 미신적인 소리에 의해 선수촌이 창건된 것도 아니요, 그 속에서 50년 넘게 영웅들의 위대한 전설만 쓰인 것도 아니다. 기억은 특정인의 인상이나 경험이 아니다. 사회 속에서 격렬하게 생성되고 소멸되는 ‘기억과 망각의 적대적인 상호작용’이다. 파편화되고 불완전한 개인 기억에 의해 특정 사건이나 장소가 전면적인 의미를 차지해서는 곤란하다.

승리한 자, 메달리스트, 체육과 문화의 권력, 스타들. 이들에 의해 특정한 방향으로 해석된 태릉선수촌의 장소적 기억을 모든 체육인들에게 강요하고, 그 공간을 둘러싼 상처와 실의와 좌절을 망각의 강으로 흘려보내는, 그런 왜곡의 논리로 현재의 자리를 보존하자는 주장에는 반대한다. ‘온 국민의 기억’이란 말도 어폐가 있다. 잠실이나 동대문운동장과는 경우가 다르다. 태릉선수촌은 어지간한 사람은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고, 겨우 1년에 한두 번 행사 때문에 개방했던, 그런 외딴섬이었다.

보존을 주장하려면 체육 역사를 전면적으로 새로 쓸 것, 엘리트 중심의 한국 체육사 서술을 다차원의 다중 기억 방식으로 재현할 것, 문자 사료뿐만 아니라 수많은 관련 자료의 아카이빙을 집성할 것, 폐쇄된 엘리트 훈련 방식의 개혁 프로그램을 제시할 것, 그러면서 동시에 현재의 자리를 지켜야만 하는 문화적 근거를 모색할 것 등이 요구된다.

그저 ‘88올림픽의 영광과 선수들의 땀방울’을 보존하자는 정도로는 ‘세계문화유산 원형 복원’의 국제적이며 역사적인 논리를 이길 수 없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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