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꼰대 아재’들은 쉽게들 말한다. “옛날보다 나아졌다”고. “옛날에는 더 심했다”고, 그런 ‘꼰대 아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저녁 점호하고 청소 검사를 받을 때 몸을 살짝 밀면서 지적을 해요. 군기를 잡으려는 것 같아요. 인원 보고는 하루 네 번 하는데, 모두 층장, 총층장, 사감 등에게 보고해야 해요. 일반 학교 기숙사 친구들이 ‘너희는 군대나 교도소에서 사는 것 같아’라고 해요.”

체육고등학교 육상부 2학년생의 말이다. 다름 아닌 2019년의 증언!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이 지난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7개 학교, 비수도권 9개 학교, 학교급별로는 중학교 3곳, 고등학교 13곳 등 총 16개 학교를 방문 조사하는 과정에서 채록한 것이다. 지금의 중·고교 학생들이면 21세기에 태어났고 큰 탈 없으면 22세기도 볼 수 있는데, 그들에게 요구되는 훈육과 질서는 반세기도 전인 20세기 중엽의 것이고 그들이 암기해야 할 체육의 가치는 무려 1세기도 전인 19세기의 국가주의다. 같은 학교 3학년생의 증언이다.

“온종일 공부하고 운동하고 돌아와 편히 쉬고 싶은데, 여기는 쉬는 곳이 아니라 노동을 하는 데 같아요.”

나는 평소에 우리의 스포츠 문화가 선수들로 하여금 ‘말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으며 이는 개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랬더니, 어떤 논평가가 “현장을 잘 모르시나본데” 하면서 선수들이 의외로 말을 잘한다, 동료들과 농담도 주고받고 인터뷰도 잘한다고 내게 말했다. 물론 동의한다. 인기 예능 프로 <뭉쳐야 찬다>를 봐도 알 수 있다. 일상 대화는 다들 잘하는 편이고, 설령 과묵하거나 어눌하다고 해서 그것이 왜 문제이겠는가.

내가 말하는 ‘말’은 능란한 화술이나 재치 있는 농담이 아니다. 어느 비운의 정치인이 말했듯이 ‘말을 잘한다’는 것은 화술이나 말재주가 아니라 살아온 삶의 밑천을 가지고 증명하고 대화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뜻한다.

그것이 허락되고 있는가. 과연 선수들이 자유롭게 ‘말’을 하고 있는가. 그런 의미에서 ‘선수들이 말을 잘 못한다’는 말은, 화술이 떨어진다는 식의 낡아빠진 관점이 아니라, 일상적으로는 가까운 지도자나 선배들에 의하여, 제도적으로는 ‘말을 할 수 없도록 강제’하는 우리 스포츠의 훈육적 질서에 의하여, 너무나 오랫동안 침묵해왔고, 그러다 보니 자신들의 타당한 의견과 온당한 권리를 말하는 데 있어 주춤거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선수들이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은, 그 무슨 스피치 요령이나 인터뷰 기술을 배워 달변을 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시 국가인권위의 조사를 살펴보자. 2019년 기준으로 전국 중·고교에 4만7000여 학생선수가 있고 그중 20%에 달하는 1만여명이 합숙 생활을 하고 있다. 그들은 대체로 한 방에서 7명 이상 생활하고 있으며 어떤 경우는 한 방에서 10명 이상이 생활한다. 어느 중학교 축구부 학생들은 전체 25명이 1층과 2층에서 생활하는데 각 층은 방이 따로 없고 전체가 트여 있다. 어느 축구 명문 고교도 10인실 1개, 7인실 3개, 6인실 2개에서 생활한다.

폭력의 상태에 상시적으로 노출되어 있고 실제로 인권위 조사에서도 폭력과 성폭력이 보고되고 있으나, 실질적인 폭력이 없다 해도 이러한 시공간의 ‘보이지 않는 작동’은 개선해야 한다. 점호 시행, 인원 파악, 청소 검사 등 병영적 규율과 문화가 일상 아니겠는가. 운동에 소질이 있다는 이유로 일찌감치 가족과 학교로부터 벗어난 아이들은, 2019년 현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성장기의 10여년을 ‘개인’이나 ‘사생활’이라는 개념 자체가 실종된 공간에서 보내고 있다. 그 시공간을 지탱케 하는 언어, 규범, 문화 자체가 문제적이다.

‘우리 때는 말도 못해요. 요즘은 정말 많이 나아졌지’라고 말하는 자들이여. 낡은 생각 바꾸는데 1분이면 충분하다. 국가인권위원회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합숙소 앞에 멈춰선 인권’을 읽어보라. 읽다 말고, 한숨 몇 번 쉬게 될 것이다. 4차산업 정보화 시대요, 올림픽 10위권이라는 나라에서, 1만여명의 아이들은 여전히 20세기 중엽의 시공간에서 살고 있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스포츠인의 자결과 자율

축구는 영원하고 감독은 경질된다. 유럽 축구장의 오랜 경구다. 누군가 경질되어야 한다면 감독 말고는 없다...

news.khan.co.kr

 

[정윤수의 오프사이드]평균대 위에 놓인 한국 스포츠

스포츠는 아름답다. 지네딘 지단은 말했다. “언제까지나 지금 이 상태로 플레이를 하고 싶을 때가 있다. 공...

news.khan.co.kr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6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