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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10개밖에 없는 일자리가 있다. 프로야구 감독이다. 본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영예이고, 그 자리에 오르지 못한 야구인들에겐 선망의 대상이 되는 자리다.

감독은 스타와 신인을 가리지 않고 수십명의 젊은 선수들에게 ‘인사권’을 행사한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기사로 보도되고 주 6일 얼굴이 TV로 생중계되는 유명인이다. 좋은 성적을 거두면 거액의 연봉도 받는다. 부와 명예, 권력을 모두 누릴 수 있는 자리가 프로야구 감독이다.

하지만 감독직은 ‘독이 든 성배’이기도 하다. 여론에 워낙 민감한 자리이다보니 제아무리 스타 감독이라 하더라도 성과를 내지 못하면 하루아침에 경질될 수 있다. 해마다 중도 사퇴하거나 시즌 종료 후 재계약하지 못하는 감독들이 나오는데, 2020시즌은 유독 중도 낙마한 감독들이 많았다. 이 대열의 첫 번째 주자는 한용덕 한화 감독이었다. 팀이 14연패에 빠졌던 지난 6월7일 경질됐다. 염경엽 SK 감독은 지난 6월25일 경기 도중 실신했다. 성적 스트레스 탓에 먹지도 자지도 못했던 터였다. 그는 결국 ‘병가’에 들어갔다.

지난 8일 세 번째 낙마자가 탄생했다. 키움 히어로즈의 손혁 감독이다. 구단은 ‘성적 부진에 책임을 진 자진 사퇴’라고 주장했으나 석연찮은 점이 있어 논란이 커지고 있다. 그는 올해 지휘봉을 잡은 초보감독이었다. 부·명예·권력을 보장하는 일자리를 1년도 되지 않아 스스로 내놓으려면 누가 봐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게 상식이다. 팀이 3위였으니 성적 부진은 납득할 만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수많은 언론 보도는 사퇴의 진짜 배경으로 허민 히어로즈 이사회 의장을 지목하고 있다. 허 의장은 팀 연습경기에 투수로 직접 등판하거나 퇴근하는 2군 선수들을 붙잡고 라이브 배팅을 하는 등 기행을 일삼아 이미 악명이 높았다. 그런 허 의장이 감독의 영역인 경기 운영에 지나치게 간섭했고, 인내심이 바닥난 손 감독이 사표를 던졌다는 게 요즘 쏟아져 나오고 있는 기사의 골자다.

그간 프로야구에서 감독의 사퇴란 모든 책임을 한 사람에게 뒤집어씌워 팬들의 비난을 일거에 잠재울 수 있는 해결책이었다. 구단의 의사결정권자들은 팀의 몰락에 ‘지분’이 있더라도 감독 교체라는 면죄부를 앞세워 대외적으로는 거의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손 감독의 이례적인 사퇴는 구단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를 겨냥하는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말았다.

 

올해 프로야구에는 거센 여론에 밀려 구단이 의사결정을 번복하는 사례가 몇 차례 있었다. NC는 1차지명 신인 김유성의 학교폭력 이력이 드러나자 지명을 철회했다. 앞서 키움도 음주운전 삼진아웃으로 처벌받은 전 메이저리거 강정호의 입단 계약을 포기했다. 그 어느 때보다 비판 여론이 뜨겁게 끓어오르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해명이든 변명이든 여론에 대응해야 할 때지만 키움은 침묵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허 의장의 전횡을 비판하는 보도는 잦아들더라도 ‘비상식적 구단’이라는 낙인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키움은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고 논란을 방치하는 묵묵부답 전략을 채택함으로써 타이틀 스폰서인 키움증권까지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

<최희진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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