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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윤리센터’가 출범했다.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다. 애초 ‘스포츠혁신위원회’가 이 기구를 정부에 권고할 때는 ‘스포츠인권센터’였기 때문이다. 윤리와 인권, 둘 다 우리 현실에 중요한 기준이 되는 단어다. 그런데 ‘윤리’는 철학의 영역에서 깊이 탐구되는 바와 달리, 스포츠 현실에서는 ‘잘잘못’을 가리는 도구적 개념으로 한정되어 왔다. 이 때문에 새로 출범한 ‘윤리센터’가 기존보다 역할이 조금 확대된 ‘상벌기구’로 활동폭이 제한될 수 있다.

반면 ‘인권’이라고 할 경우, 스포츠의 긴급한 문제나 복잡한 상황을 보편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게 한다. ‘윤리’가 폭력과 성폭력, 공정, 부정부패 등을 다룬다면 ‘인권’은 그것을 포함하되, 한국의 스포츠 현장에서 벌어지는 제반의 상황들, 예컨대 그 정책의 수립과 적용, 실제 스포츠 현장의 관습과 문화, 구체적으로 진행되는 연습, 생활, 대회 등을 총괄하는 헌법적 차원의 활동까지 가능하다.

이런 차원에서 ‘윤리’가 아니라 그것을 포함한 ‘인권’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거듭했으나 20대 국회 때 ‘윤리’라는 이름으로 몇몇 의원이 법안을 제출한 바 있고 또 ‘국가인권위원회’와의 관계 설정 등에 의하여 ‘윤리’로 귀결되었다. 아쉽지만, 그러나 제안컨대 ‘윤리’의 개념을 확장하고 그 활동의 폭을, 법이 정한 테두리 내에서 적극적으로 해석해 이 기구가 특정한 사건의 명확한 해결뿐만 아니라 오랜 제도, 관습, 문화 등에 걸쳐 ‘비윤리’적인 요소도 해결해 나가는 기구로 활동하기를 바란다.

이와 더불어 또 하나의 중요한 법 개정이 이뤄졌다.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지난 4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1조(목적)의 ‘국위 선양’이 ‘연대’ ‘인권’ ‘행복’ ‘공동체’ 등으로 바뀌었다. 일부 연구자들의 주장대로 ‘국위 선양’은 일제의 잔재다. ‘국위’는 일본 천황을 뜻하고 그것을 ‘선양’하는 것으로 19세기 메이지유신 때 만들어진 용어다. 일제강점기의 신문 기사들을 살펴보면 ‘경성부교육회는 조선신궁에서 국위 선양기원제 거행’(동아일보, 1937년 7월22일), ‘조선신궁에서 국위 선양과 황군의 무운장구기원제 거행’(1940년 7월4일) 등 천황 중심적으로 쓰였다. 이것이 해방 이후 자연스럽게 ‘국가 위상을 드높이는 쾌거’로 변용되어 사용됐다. 물론 탄소, 질소, 과장, 계장같이 그 시절에 도입되어 1세기 가까이 쓰고 있는 모든 용어를 ‘일제 잔재’라는 이유로 없애자고 하기 어려운 것처럼 ‘국위 선양’ 역시 단어 자체보다는 그것이 어떤 시대적 맥락에서 쓰였는가가 중요하다.

해방 이후 스포츠는 신생 독립국의 ‘국위 선양’을 위한 중요한 가치였다. 1948년 10월16일 경향신문 기사는 근대 스포츠가 ‘강인패기를 보여 국위를 선양’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렇기는 해도 법에 적시되지는 않았다. 1962년 국민체육진흥법이 제정될 때에도 이 단어는 포함되지 않았다. 1982년 법이 개정되면서 ‘국위 선양’이 추가되어 국가주의 스포츠 정책은 가속페달을 밟게 된다.

한때 의미 있는 역할을 했던 ‘국위 선양’은 곧 신성불가침의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각종 폐습과 악행의 저류에 흐르는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게 된 것이다. 오죽하면 임오경(더불어민주당), 이용(미래통합당) 등 바로 그 ‘국위 선양’을 이룬 엘리트 선수들까지 동참해 이 단어를 삭제했겠는가. 새로운 시대의 ‘국위 선양’은 스포츠를 통해 다양한 가치가 아름답게 펼쳐지는 행복한 공동체인 것이다.

이렇게 한국 스포츠의 근간을 이루는 법의 목적이 바뀌었으므로 이에 근거한 각종 규칙도 변해야 한다. 과거 국위선양 시대의 이념을 명문화한 ‘체육인헌장’이나 명령과 복종 중심인 ‘국가대표 훈련관리 지침’ 등이 그것이다. ‘스포츠윤리센터’가 아니라 ‘스포츠인권센터’여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이 때문이다. 아쉬운 대로 현재의 ‘윤리’ 차원에서도 적극적인 활동이 가능하다. ‘인권진흥실’의 교육과 홍보 업무를 적극적으로 해석해, 여전히 20세기에 머물러 있는 스포츠를 21세기로 혁신해 나가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그렇게 또 한 걸음씩 걸어가야 한다. 이 기구는 무슨 전문가들이 담론하고 정부가 수용해 설립된 것이 아니라, 선수들의 희생과 죽음으로 출범했기 때문이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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