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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연 김성근이었다. 올해 프로야구의 흥행과 집요한 관심의 주인공은 김성근 감독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프로야구, 특히 ‘마리한화’의 경기를 흡사 집안일처럼 지켜보았는데, 그 결정적인 증인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오랫동안 축구 순혈주의자를 자처하며 축구 선수들의 추락과 상승에 감정을 이입하며 살아왔는데, 올해는 그 마음의 상당 부분을 덜어서 프로야구에, 특히 한화이글스에, 무엇보다 김성근 감독에게 몰입하고야 말았다. 올해 나의 밤은 한화의 야구와 함께 뜨거웠다.

작년까지만 해도 한화는, 경기 중반에 그 흐름과 승패가 일찌감치 결정나버리곤 했다. 대여섯 점 차이로 끌려갈 경우 선수들이 지레 포기하고는 서둘러 더그아웃을 떠나려 했다. 하룻저녁의 승패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목청껏 응원하는 팬들이 오히려 더 열성적이었다. 적어도 작년까지 한화의 야구는 7회까지밖에 없었다. 그랬는데, 올해는 9회까지 질주했고 그런 후에도 운명의 주사위를 한사코 더 굴려서 연장으로까지 치달았다.

스포츠에 투사된 강렬한 감정을 사회 분석의 소재로 삼는 것은 기계적이고 위험하지만, 그래도 담장 밖으로까지 흘러넘친 ‘마리한화’ 열정은 일정하게 사회적이다.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는 것, 아니 충분한 자격을 갖췄음에도 좀처럼 타석에 설 수조차 없다는 것, 그런 절박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한화의 ‘일구이무’는 9회말까지 응시할 만한 스펙터클이었다. 물론 지나치게 쥐어짜는 작전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고 선수들 혹사 논란도 있었다. 나는 이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고자 한다. 문제는 프레임이다. 무슨 얘기인가 하면, 예컨대 ‘친노’, ‘친박’ 같은 용어를 보자. 이 말들에는 정치적 가치 지향성이 한 줌도 묻어 있지 않다. 오직 세력 프레임일 뿐이다. ‘비노’, ‘반박’ 같은 말들도, 바로 그런 프레임에 속해 있는 정치인들을 한낱 세력 다툼의 골목대장으로 여기게 한다. 일단 그렇게 고정된 프레임은 눈덩이처럼 구르고 굴러서 세력 다툼 이상의 그 무엇도 우리에게 제시하지 못한다.

김성근 감독에게도 오래되고 고정된 프레임이 있다. ‘일구이무의 리더십’이 그것이다.

이 프레임은 김성근 감독과 미디어가 함께 십수 년 동안 만들어낸 것이다. 그가 쌍방울을 지도했던 1999년의 TV 다큐멘터리 <9회말 투아웃>을 보자. 패배에 익숙한 꼴찌들을 ‘일구이무의 리더십’으로 혹독하게 조련하여 승리에 목마른 팀으로 바꿔놓는다는 프레임 안에서 쌍방울 선수들과 김성근 감독이 재현된다. 아주 감상적인 배경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프로의 세계에서 2등은 없다. 오직 승자만 있을 뿐이다”라는 익숙한 대사가 흘러넘친다. 바로 이 프레임 안에 김성근 감독은 늘 있었다.



SK 와이번스를 맡아서 3년 연속 우승을 일구며 ‘야신’이라는 칭호를 얻었을 때, 그 무렵의 대다수 미디어는 김성근 감독의 ‘일구이무 리더십’을 찬양했다. 또한 방송 등 각종 매체에 출연한 김성근 감독 역시 특유의 ‘일구이무 리더십’을 피력했고, 미디어는 바로 그 프레임을 올해까지도 복제했다.

이러한 프레임은 복잡하고도 미묘한 야구를 일정한 틀에 끼워 맞추게 된다. 그 당사자 또한 자신의 현란한 작전과 예측불허의 승부수를 단 하나의 프레임에 의한 행위로 설명하게 된다. 스포츠의 다양성, 야구의 변화무쌍함, 인간 내면의 복잡성을 ‘일구이무의 리더십’ 안에 욱여넣게 된다.

이 프레임은, 김성근 감독이 자주 강조해온 대로 ‘인간 개조’라는 프레임과 직결된다. 리더란 하나의 목표를 위해 조직과 인간을 개조해야만 하며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신념 말이다. 여러 기업과 대학들 그리고 청와대까지 가서 특강을 했던 김성근 감독은 늘 ‘인간 개조’를 향한 리더의 자격과 책무를 강조했다.

이는 스포츠 내적인 맥락에서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명제이지만 사회적으로는 대단히 위험한 양상으로 번지기 쉽다. 20세기 발전국가형 리더십의 전형이랄 수 있는 이 같은 ‘인간 개조’ 리더십은, 복잡하고도 다양한 사회적 양상을 일도양단하여 ‘요즘 아이들’이라는 식으로 재단하는 프레임이 된다.

히딩크로부터 시작하여 아드보카트와 홍명보를 거쳐 김성근으로 이어지는 ‘스포츠 리더십 따라 하기’는 제한된 영역에서, 즉 스포츠라는 고유한 영역 안에서 검토되어야만 한다. “야구를 하면서 나름대로 터득한 것이지만 기업이나 조직에는 그대로 적용하지 마시고 다만 참고는 해보라”는 정도가 적절한 지점이다.

김성근 감독의 야구, 특유의 치밀하고 섬세한 예측불허의 세계 또한 그 자신의 심오한 복기를 통해 새롭게 해석될 필요가 있다.

그는 한국 야구와 스포츠를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뛰어난 작전과 바늘 끝만큼의 기회도 놓치지 않으려는 집념을 보여줬다. 많은 사람들이 그 치밀한 세계에 경탄했던 것이지 결코 ‘일구이무의 인간 개조’에 승복한 것은 아니다. 김성근의 야구가 다양한 해석의 지평으로 펼쳐질 때 그는 더욱 깊어질 것이며 이로써 한국 스포츠 또한 더욱 넓어질 것이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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