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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이란 말이 있다. 도시의 폐허들, 낙후해 외면당한 공간들을 문화적 관점에서 보존하고 재생하려는 노력이다. 인구, 교통, 교육, 복지 등의 현황을 최대한 분석하되 그 이상의 무엇, 즉 왜 사람들은 그곳을 회피하거나 사랑하는가를 문화적으로 분석한다. 기존의 도시개발 관점에서는 쉽게 보이지 않는, 그러나 틀림없이 존재하는 그 장소의 역사성과 문화성 그리고 미묘한 삶의 질서가 문화적 안목으로 해명되고 그 해법도 모색된다.

건축가 승효상과 미술가 임옥상이 주도하는 서울 창신동의 소통공작소가 대표적이다. 뉴타운 지구 해제 이후 이 일대를 어떻게 삶의 장소로 재생할 것인가, 그 관점과 실천이 집약된 곳이다. 그 밖에 성북문화재단과 스페이스 오뉴월이 공동 추진한 ‘미아리고개 재생 프로젝트’, 예술가들이 허름한 철공소 일대에 스며들어가 신생을 도모한 문래동, 강원 철원군의 ‘철원-전환’, 안산 선감도의 ‘황금산 프로젝트’ 등이 있거니와 이제는 국가적 차원에서, 즉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도시재생 특별법’을 바탕으로 뒷받침할 정도다.

기존의 시선으로 보면 쇠락한 도시의 낙후한 시설이라 해도 예술가의 눈에는 틀림없이 신생의 씨앗이 있고 애틋한 삶의 의미가 있다. 충남 장항의 ‘선셋 장항페스티벌’이 그랬다. 1936년 이래 그곳의 제련소와 굴뚝은 장항과 군산의 역사적, 지리적 상징이었다. 제련소가 폐쇄되고 굴뚝마저 철거될 위기였으나 예술가들이 이 도시를, 이 공장을, 이 시설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보기 시작하면서 획기적인 문화예술의 공장이 됐다. 도시의 공장과 시설이 한편 무대가 되고 한편 오브제가 되는 실험적인 예술의 장이 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며칠간의 이벤트가 아니라, 교육기관까지 들어서 그야말로 교육·기획·생산·전시·공연이 선순환하는 문화도시를 만들어내는, 이를테면 독일 에센의 졸페라인 같은 구상도 왜 불가능하겠는가. 이런 얘기를 왜 하는가. 고척동의 스카이돔 때문이다. 알다시피 차선의 산물이다. 한국 현대사를 상징하는 유서 깊은 동대문운동장이 반문화적인 강제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이후 그 대체 구장으로 현재의 장소가 결정됐고 오랜 논란과 공사 끝에 돔 형태로 완공됐다.



기본적으로 야구를 위한 신생의 공간이기 때문에 시설 수준은 한국 최고다. KBO·구단·프로야구선수협회 등이 세부적인 사항을 자문하거나 주문했고 이를 서울시와 현대산업개발이 최대한 반영했다. 문제는 운영과 활용이다. 서울시는 고척돔의 원만한 운영의 결과로 상대적으로 낙후한 고척동 일대에 새로운 활력소가 펼쳐지길 기대한다. 히어로즈 구단 또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팀의 명맥을 잇는 차원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렇다면 밤낮으로 도시재생의 활로를 찾아다니는 문화전문가들을 만날 일이다. 지하철 1호선 구일역에서 고척돔까지, 걷기에는 조금 멀고 교통편은 부족하다. 이를 문화전문가에게 의뢰해 보라. 하나뿐인 출구로 나와 600m 남짓 걸어야만 하는 그 길을 전문가들은 놀라운 파격의 놀이와 문화의 길로 만들 것이다. 아니, 벌써 늦었다. 흔히 문화적 접목이라고 하면 문화행사 유치로 생각한다. 개장식 때 어떤 공연을 할 것인가 정도 말이다. 그도 아니면, 여기에 어떤 업체를 입점시킬 것인가 생각한다. 쇼핑몰, 예식장, 극장, 식당가 등 말이다. 이렇게 행사용이나 사후 입점 방식으로 문화를 생각한 결과, 숱한 흉물이 만들어졌다. 전국 각지의 월드컵경기장과 인천의 아시아드 주경기장, 어쩌면 엄청난 재앙이 될 수도 있는 평창 일대의 올림픽 시설들 말이다. 문화적 상상력의 빈곤으로 인해 사람들이 접근하기를 꺼리니 어떤 업체가 입점하겠는가.

사전에, 아니 적어도 공사 과정에라도 문화전문가들이 참여해야 한다. 해당 지역의 역사성 해석과 해당 장소의 문화적 의미 재해석, 해당 시설의 고유기능과 결합기능의 창조적인 가능성, 시설 이용자들의 문화적 욕망과 공간의 구획 및 배치 그리고 무엇보다 해당 지역 주민들의 일상 현황과 그 시설의 융합이 빚어낼 미래적 삶의 가치 등을 문화 기획자들과 함께, 또는 문화 기획자들이 주도해 만들었어야 한다. 이 점에서 고척돔도 늦었다. 움직일 수 없는 시설물을 고착시켜 놓고 여기에 어떤 행사를 치르고 무엇을 입점시킬까 하는 것은, 사후적이며 기능적이다. 사전에 그 공간의 역사적 가치와 문화적 의미를 해석하고 실천하는 작업이 있어야 했다.

지금이라도 추상적인 팬이나 시민이 아니라, 고척동 주민들을 위한 문화복지 시설이 반드시 들어가야 하고, 인근 대학의 스포츠 관련학과 학생들을 위해 개방해야 하며 심지어는 스포츠 전문대학 유치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1000인의 예술가’ 같은 프로젝트도 구상해 예술가들이 다양한 작업을 해서, 경기가 없는 날에도 사람들이 몰려들어야 한다. 대규모 영업시설 입점식의 빈곤한 상상력으로는 몇 해 버티지 못한다. 장사는 3년이고 문화는 30년, 곧 한 세대를 창출한다.

더욱이 지역 연고성이 취약해 입에 익을 만하면 팀 이름이 바뀌는 히어로즈 구단 아닌가. 이럴수록 문화전문가를 구해 강렬하고도 싱싱한 한국 최초 돔구장 문화를 창조해야 한다. 폐허에서도 꽃을 피웠는데, 고척돔에서는 뭘 못하랴.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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